사기꾼 이야기 / 정성수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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