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1 / 이영광
늙은 몸은 절하기 위해 절에 온다
절 가지고 될 일도 안 될 일도 있고
절 없이도 일은 되기도 안 되기도 하는 것인데,
그저 모든 걸 다 들어 바치는 절은
내가 받는 듯, 난감하다
온몸으로 사지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그 힘을 받쳐 올렸다가
다시 통째로 제자리에 내려놓은 절
성한 데 없는 늙은 뼈가 웅웅
또 저만 빼고, 일문의 안녕을 엎드려 비는데
나는 그만 절을 피해
배롱나무 아래로 들어간다
늙은 나무가 가득히 피워 놓은 붉은 꽃들
또한 절하는 자세여서,
절 안에서 내다보면
그늘 밖에는 햇빛이 타는 어지러운 한세상이,
꽃잎에 싸여 엎드린 아름다운 몸이, 있다
결정적인 일은 다 절 가지고는 안 되었는데
몸은 아직 더 결정적인 일이 남아 있다는 거다
몸은 무너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무너졌는데도 결코 무너지는 법이 없다
아, 꽃잎은 그런 당신을 끝없이 적신다
어머니 뼈는 저 자세에서 가장 단단하고 구멍 없다
저 자세는 몸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내가 절하고 싶은 몸이 왜 당신뿐인지 알겠다
수없이 많은 절 이미 받고 꽃그늘 아래
헤롱헤롱 두 발로 잘 서 있음도 알겠다.
문예연구 (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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