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 안도현
배꽃 속에 흑염소들이 몇 마리 살고 있다
뿔은 서로 떠받을 일이 없어 말랑말랑하고
엉덩이는 누구를 향해 실룩거려 보지 않아 볼그족족하다
가족끼리 영 재미없는 고스톱을 치는 것도 같고
배꽃천주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묵상중인 것도 같다
그런데 올봄에 꽃잎 속의 흑염소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 있다
하늘을 윙윙 나는 비행기의 조종사들이 파업을 하자
불임의 배나무를 위해 과수원 여주인은
수정을 시키는 거라 했다 이래야 애가 생겨요, 했다
정말 환한 통증 같은 꽃잎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
나는 배나무 과수원을 돌아 나오며
흑염소들을 위해 옛 시인의 시 한 수를 가만히 읊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유심> 2008 여름호
'♣ 詩그리고詩 > 한국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엽서 / 안도현 (0) | 2010.02.04 |
---|---|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0) | 2010.02.03 |
쨍한 사랑노래 / 황동규 (0) | 2010.01.27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 2010.01.27 |
어떤 순교, 후 / 송 희 (0) | 2010.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