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한겨울 나무마을로 간다 / 최금녀

시인 최주식 2010. 2. 2. 22:05

한겨울 나무마을로 간다  / 최금녀

 

나무마을로 간다
키가 큰 잣, 리키타, 상수리, 느릅
그 아래 작은 집 한 채씩 짓고 사는
산뽕, 갈메, 산죽, 다릅

 

이 겨울 나무마을은
하나같이 독한 마음으로
머리 깎고 선방禪房에 들어갔다

 

눈도 그 동네 눈은 참선을 한다
나무 가지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땅으로 내려와 가부좌를 튼다

 

깎지 못하는 머리털을 이고
나는 나무마을로 간다

 

비탈진 쪽으로 뿌리 버팅겨 섰던
뿌리의 등어리 흙밖으로 불거졌던
등 시린 나무
이 추위 어떻게 지내는지,
중심은 아직도 탄탄한지

 

작년 봄, 옆구리 여기저기에
링거 줄 매달고 중환자였던 고로쇠나무입춘은 가까워 오는데 또 어쩐다?


오늘 눈이나 마음 푸근하게 쏟아져
눈이불 얇은 싹들을 다 덮어 주고
관자놀이에 심줄 돋은 뿌리와
못자국이 험한 고로쇠도
푹 덮어 주었으면 좋겠다

 

선방 나무들도 동안거 해제解制하고
숲으로 뛰어나와 두 팔 벌리고
하늘이 내려주는 복을 받으며 기뻐하리라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 연극 / 강영은   (0) 2010.02.02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 위선환   (0) 2010.02.02
눌러앉다 / 손현숙  (0) 2010.02.02
석류 / 배우식  (0) 2010.02.02
가을 식사 / 최금녀  (0)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