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항아리 1 / 김금용
나팔을 불고 싶었어요
푸른 녹 더께로 앉은 내 안의 벽
허물어내고 싶었어요
곰팡이 냄새에 눈 시린 거미들이
끈끈한 타액으로 몸뚱이를 둥글릴 때
난 번데기 안에 숨어서 언젠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꿨죠
한 백년쯤 거꾸로 지하감옥에 매달려
어둠 속에 박쥐로 살더라도
만 개의 만댕이가 살 맞대고 아치형으로 서듯
사랑하고 사랑 받는 구속 안에서
천 칠백도 장작불에 오래도록 구워내진
질그릇으로 태어나기를 바랬어요
나를 불지르고도 내 안에서부터 차가워지는
지독한 독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어요
정말 나팔을 불고 싶었어요
시집 <넘치는 그늘> 천년의시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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