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질항아리 1 / 김금용

시인 최주식 2010. 2. 4. 22:56

질항아리 1 / 김금용
                

나팔을 불고 싶었어요

푸른 녹 더께로 앉은 내 안의 벽

허물어내고 싶었어요

곰팡이 냄새에 눈 시린 거미들이

끈끈한 타액으로 몸뚱이를 둥글릴 때

난 번데기 안에 숨어서 언젠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꿨죠

한 백년쯤 거꾸로 지하감옥에 매달려

어둠 속에 박쥐로 살더라도

만 개의 만댕이가 살 맞대고 아치형으로 서듯

사랑하고 사랑 받는 구속 안에서

천 칠백도 장작불에 오래도록 구워내진 

질그릇으로 태어나기를 바랬어요

나를 불지르고도 내 안에서부터 차가워지는

지독한 독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어요

정말 나팔을 불고 싶었어요  

                                                     

  

시집 <넘치는 그늘> 천년의시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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