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강장제
정 영
밑턱구름이 법원건물 송신탑 허리께 나앉아 있다. 뒷짐에서 선주먹이라도 꺼내 한바탕 객기를 풀 태세로, 막소주에 흠뻑 절은 번화가의 휴가병처럼 곧 무슨 심술이라도 부릴 것만 같다. 아내의 가출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김수길 변호사 사무실의 창문은 수자와 길자가, 변자와 호자가 서로 포개져서 열려 있다. 그 사이에 수길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다. 기압이 낮아지면 수길의 코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한다. 코가 매운 듯 싶어지더니 덩달아 관자놀이가 빨라지고 편두통의 조짐이 보인다. 차가 아무리 늘어도 인구 15만 명에 변변한 산업단지도 없는 소비도시라 별다른 공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수길은 이럴 때마다 번번이 다른 핑계를 찾곤 한다.
오는 손님 따져가며 장사하는 변호사는 없다. 의뢰인에게 진위 여부를 따지는 일도 어리석다. 의뢰인의 진술을 법논리에 맞게 주장해주면 그 뿐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변호하는 일엔 서툴기 그지없다. 저멀리 천변쪽에 겨울 대목을 맞은 소주공장의 굴뚝이 제법 걸게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장날 국밥집 가마솥 굴뚝연기를 보는 것만큼 맘이 넉넉해지면 좋으련만 수길은 영 탐탁지가 않다. 오늘 코가 맹맹한 건 소주공장 때문이고 기분이 무지근히 가라앉은 건 아침나절부터 선산 문제로 대거리를 하고간 어떤 문중 때문이다.
“손오공이 어느날 구름을 타고 싶었는데, 글쎄 하필 하느님이 서쪽 나라 기우제에 감복해서 구름이란 구름은 몽땅 거기로 끌고 갔지 뭡니까. 하느님이 주문을 외웠습니다. ‘운우장생(雲雨長生)이라’ 이 요망한 원숭이는 뭐든 맘먹으면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꼬락서니라서 하느님 귀에다가 이런 새살을 떨었죠.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허허허...... 그때 담배가 있었다면 손오공이 돌산에서 화석이 되질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이런 날 담배연기는 아래로 쫘악 깔리면서 꼭 구름타고 날아 다니는 기분이 든다 이겁니다.”
사무장 박기대가 담배를 권한다. 잔사설에 한번 희부옇게 웃어줄 수도 있는 일인데, 내키지가 않았다. 수길은 담배만 빼물고 나이가 한참 윗길인 사무장이 불을 붙여주었다. 과연 담배연기는 낮은 기압에 눌려 위로 솟지 못하고 얼굴 주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몸을 푼다. 두세 모금만에 담배를 끄고 만다. 구름을 타는 기분을 느끼려고 피운 담배가 아니지만 콧병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짜고 매운 들숨이 깊은 곳까지 아릿하게 전해졌다. 그가 건네는 자양강장제 박카스병 마개를 열었다. 이음새는 이미 떨어져 나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미리 마개를 연 다음 물티슈로 병입구를 잘 닦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들어온 수길에게 사무장이 서비스하는 일과였다. 매번 새로운 상황연기로 담배를 권하며 박카스 병 입구를 잘 닦아서 건네고 그걸 다 마시는 수길을 보며 만족해하는 웃음을 띤다.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중독이야, 하고 매번 속으로 되뇌지만 하루에 딱 한 병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수길은 그때서야 사무장에게 웃음을 보여준다. 둘은 잠시 반짝 갠 얼굴로 마주한다. 같은 얼굴이라도 동의어의 미묘한 뉘앙스 만큼의 차이가 있긴 하다. 수길은 ‘아예’라는 말을 잘 쓴다. 사무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에서부터 상담과 소송에 이르기까지 이 말은 수길의 입질에 자주 오르내린다. 겉모양만 거쿨진 말을 쓰면서 자신이 왠지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깊은 사고를 귀찮아하는 자신을 매번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사무장은 ‘숫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딱히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더 익은 표현이라고 공인받은 적은 없지만 어감이 저으기 그렇다.
“잘못했어요. 이승만이 토지개혁할 때 숫제 선산까지 모조리 재분배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긴 몇십 년 후에 질양지 야산 몇 뙈기가 금값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에요.”
사무장은 작달막한 몸집을 흔들며 사람좋게 웃었다. 그러면서 박카스 빈 병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하지만 방을 나설 땐 언제 웃었냐는 듯 반듯한 목례를 남긴다. 긴요한 임무를 하명받은 대가집 청지기처럼 굳게 다문 입술엔 윗사람에 대한 경건함이 절로 묻어난다. 행여 김수길이 ‘인간적’이라는 명분으로 신분 차이를 넘나들라치면 조근조근 뒷사랑 문어귀에 조아려서 사리를 따질 듯이 보이기도 했다. 무심코 수길이 손을 뻗치면 닿을 쓰레기통에 빈 병을 버렸을 때, 부러 다시 집어내 오는 그를 보면 단순히 아부가 몸에 밴 사람으로만은 보이지가 않았다.
수길은 길게 한번 기지개를 켜며 회전의자에 털썩 몸을 던졌다. 사무장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 수길의 방 직통 전화로 두 개의 메시지가 녹음되어 있었다.
‘무고죄로 걸어. 내가 무고죄 전문이잖아. 그쪽 피고 사건은 내가 맡으면 되겠네.’
대학과 연수원 동기인 이숙민의 싱거운 농담이다. 지난번 숙민이 지방신문에 실명을 거론하며 시정(市政)을 비판한 기사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수길이 변호해준 일도 있고 하니 숙민은 별 생색없이 이번 건을 처리해 줄 것이다. 미리 술추렴이나 해두면 깔끔하게 뒷탈까지 막음해줄 녀석이다.
‘오늘 새 그릇 들여갈 거예요. 이번 건 당신이 좋아할 거 같은데, 철상감(鐵象嵌)을 해서 빛깔이 유별나요. 생선요리를 담으면 제격이에요...... 저녁약속 없죠? 화이트 와인도 준비됐어요.’
아내가 오긴 왔다. 하지만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까.
전화목소리는 차지게 공글린 고령토처럼 번들거린다. 먹고 살기 수월한 지방의 변호사 사모님들의 그렇고 그런 사교집단이란 소릴 듣기 싫어서인지 좀 유별난 구석이 있긴 하다. 숙민의 마누라가 연주하는 첼로 음에 맞춰 물레가 돌고 손 끝에 미세한 첼로 선율을 묻혀 내는 작업을 한 적도 있다. ‘LP판 있죠? 도자기에도 그런 결이 있어요. 옛날 도공들의 작품을 레이저로 재생하면 도공의 맘을 소리로 들을 수가 있어요. 일종의, 번뇌를 녹이는 아날로그적 위안같은 거죠.’
아내 생각이 날 때마다 뒷목에 손이 자주 올라가는 오후였다. 잊을만하면 일없이도 한번씩 들르는 수길의 줄동창 경렬이 찾아왔다. 비서의 안내보다 먼저 문을 잡아열고 들어서며 ‘어이, 여비서 또 갈았냐? 마누라는 못 바꿔도, 암튼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 살지.’ 하며 여비서의 궁둥짝을 슬금슬금 훔쳐보거나, 미적거리는 수길의 손을 억세게 낚아채 흔들어대고 소파에 질펀하게 주저앉아 상대방을 느물느물 건너다보는 상견례를 해야할 놈이 이번에는 영 딴판으로 쓰다달다 말이 없다.
동창들 사이에서 그는 기피인물 1호다. 지역사회에서 내놓고 외면을 할 순 없고 만나면 모두 격을 갖추고 반가워하긴 하지만 누구도 그와 깊숙한 친교를 나누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런데, 동창들치고, 아니 이 지역사회에서 이름석자 걸고 살아가는 사람치고 허경렬의 술 한잔 얻어먹어 보지 않은 사람, 그에게 알음알음 곁불로나마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그는 마당발이었다.
수길 또한 그가 물어다준 굵직한 송사 몇 건으로 수임료를 크게 챙긴 일이 두어 번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은 말을 거들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가 수길에게 무슨 해를 입힌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그의 용모 탓일까. 뱁새눈에 대머리, 오종종한 이목구비, 좁은 어깨에 툭 불거진 엉덩이. 좋은 첫인상을 가질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십 년씩 알고 지내는 처지에 그런 첫인상 따윈 이미 눈에 녹아 유야무야 되기 마련 아닌가.
동창들이 털어놓는 허경렬의 평판은 하나같이 이렇다. ‘아 그 간신뱅이 자식, 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지나가는 말로도 ‘아니야, 허경렬이 그러려고 그런게 아니라......’라는 식으로 변호해주는 친구 하나 없었다. 하긴 그가 없는 술자리에서 허경렬이 입질에 오르기라도 하면 더없이 유쾌해지기 마련이었다. 실컷 흉을 보아도 양심에 일말의 뒤끝을 남기는 일이 없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침팬지가 서열높은 놈 이 잡아주는 거 본 적 있지? 동물의 왕국 같은 데에서.”
한참이나 뜸을 들인 다음에 내뱉는 허경렬의 난데없는 발설이었다.
“난 이상하게도 힘없고 초라한 놈의 표정이 더 행복해 보이더라. 몸을 맡기고 앉아있는 힘센 놈의 윤기 흐르는 털이며 가증스럽게 치켜 뜬 눈하며 자기 자리에 연연해 경직된 자세하며.....”
“행복으로 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게 더 낫지 않나?”
수길은 일부러 큰소리로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허경렬의 어깨를 툭 쳤다.
“너는 행복하니...... 임마?”
이젠 아예 목소리까지 잠겨버렸다.
“왜 그래? 마누라가 이혼이라도 하제?”
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너무 보잘것없어서 아이들의 손때도 타지 않은 마른 수수깡이 말라비틀어져 겨울 바람에 툭 꺾여져 있는 걸 보는 듯했다. 그는 피식 웃더니 차도 마시지 않고 사무실의 공로패들을 빙 둘러보고서는 돌아가 버렸다.
수길은 공연히 건짜증이 났다. 관계에도 관성이라는 게 있다면, 허경렬은 수길의 사업 근황에 대해 묻거나 시행정의 주요 흐름을 알려주고 갔어야 했다. 그래, 그는 그렇게 살아온 놈이다.
허경렬의 첫인상은 역시 명찰 사건으로 기억된다. 새로운 학년초 아직 급우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때였다. 경렬이 학교 진입로에서 서성이는 게 보였다. 다짜고짜 수길의 이름을 부르더니 명찰을 내민다. 월요일이면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옷을 빨고서 다림질까지는 잘했으나 아크릴 명찰 다는 걸 깜빡하는 것이다. 정문 앞에는 선도부 선생이 지키고 있다. 자기 이름의 명찰을 받아들면서도 왠지 께름칙하다. 경렬은 명찰가게에서 받는 가격만 받았다. 그가 직접 만든 명찰이다. 얼마간의 이윤을 남길 터다. 수길은 얻어맞을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다. 경렬이 비굴하게 웃었던가. 명찰 뿐이 아니다. 교복 단추며, 교모, 옷핀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다 챙겨가지고 다녔다. 그는 선도부 일정을 다 꿰고 다녔다. 그렇다고 그런 걸 급우들에게 숨기는 것도 아니다. 깜빡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자기도 모르게 불시에 선도부 아침 등교길 검열이 있는 날이면 아예 선도부와 함께 서서 같은 반 급우나 자기와 친한 애들에게 면죄부를 안기는 것이었다. 선도부 선생까지 구워삼는 실력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또 하나 잊지못할 사건이 있다. 그들의 고등학교는 체육복이 없었다. 체육선생이 어떤 체육사(운동복이나 운동기구, 명찰 만드는 기계 등이 있는 가게)와 결탁하여 체육복 채택 커미션을 받았다는 미확인 루머 때문이라는 말이 있긴 했다. 그냥 교복을 입고 체육수업을 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 선생 참 인간 말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여러 가지 지저분한 소문도 많았고, 애들 때리는 것도 정도를 넘어서 그 선생 좋아하는 애들이 없었다. 그런데 허경렬은 달랐다. 수업시간에 박카스 사다가 바치는 건 다른 과목 수업에서도 다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 날 일은 좀 심했다 싶었다.
체육선생은 처음 몸풀기 체조를 하면서 늘 물구나무서는 걸 시켰다. 주머니에서 동전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걸 집으려고 하다가는 사단이 난다. 여지없이 발길질이 날아온다. 선생은 그 동전을 주우면서 한껏 이죽거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새끼들 맨날 잊어먹지? 이렇게 삼 년이면 체육복 두세 벌을 사고도 남겠다.’ 그렇게 주우면 한 움큼이다.
그런데 그 날은 체육선생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총무였던 허경렬이 축구부 간식 후원비가 문제가 되어서 돌려준다면서 칠백원씩 나눠주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왜 체육시간을 앞에 두고 그 돈을 나눠줬을까. 그때 반장이었던 수길은 당장 돈을 나눠주고 지장 찍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허경렬의 안달을 승인했던 탓에 급우들로부터 두고두고 싫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허경렬은 학교 수위아저씨를 양념오징어로 구워삶아서 수시로 학교 바깥 출입을 했다. 체육, 교련시간에 그는 늘 외출 중이었고, 미술이나 음악, 그리고 그를 예뻐하는 몇몇 과목 선생에게도 말만 잘하면 외출이 허용되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모범생도 아니었지만, 그는 매를 맞아야 할 자리에는 쏙 빠져있기 십상이었다.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허경렬이 학교를 자퇴했다, 퇴학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만 많았다. 아무튼 그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수길과 같은 반이 아니라서 잘은 알 수가 없었다. 부정행위를 하다가 된통 걸렸다는 말도 있었고, 수학시험 성적을 선생과 함께 조작하려다가 적발됐다고도 하고, 심지어 학생주임 마누라랑 붙어먹다가 그랬다는 말도 있고. 그러나 그들 동급생들을 더욱 놀라게 한 건, 그가 졸업식 날 번연히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졸업장을 받고, 후배들에게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숙민이 날씨 타령을 하며 술자리를 청했지만, 수길은 근 열흘만에 가마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를 생각해서 애써 다음을 기약하며 그의 집요한 한 잔 유혹을 뿌리쳤다. 아내가 주방의 그릇을 모조리 바꾸는 일은 딱히 여자들이 향수나 침대 시트를 바꾸는 호사취미와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방그릇 세트를 바꾸는 시기가 사무실 여직원을 갈아치우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맞아들어간다.
그가 삼 년 전 처음으로 스무 살짜리 사무실 여직원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았을 때 아내는 아무런 강짜를 부리지 않았다. 그건 도예과 젊은 남자 후배와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묵인해 준 대가인 셈이었다. 조용히 여직원을 바꾸고 열흘쯤 집을 비웠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갓 구운 도자기를 몇 상자 싸오는 아내의 얼굴은 화장기가 없어도 한결 싱그러워 보였다.
“이번 그릇, 어때요? 이제 점점 장작불에 익숙해지는 거 같지 않아요? 자기는 역시 흙이 아니라 불이에요. 지금까지 해온 가스불 가마는 영 헛것이었어요. 반쪽 짜리 도예를 한 셈이죠.”
그런 날이면 마흔을 훌쩍 넘긴 아내의 몸은 태백산 산신단 근처에서 베온 참나무 숯불처럼 일렁거리는 붉은 혀로 가마 전체를 화염으로 감싸안을 태세로 덤벼들었다. 너무 뜨겁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녀 앞에선 고작 석 달 만난 덜 마른 장작같은 스무 살짜리 젖가슴일랑 떠올리지 못한다. 수길보다 머리하나쯤은 더 큰 서른 살짜리 도공의 넓은 가슴판 같은 것도 질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수길은 매번 아내 앞에서 고스란히 유약의 빛깔을 다 뽐내지도 못하고 열기를 견뎌내지 못한 채 터져버리는 도자기 신세가 되고 만다.
다음날 허경렬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좀더 많은 말을 했을 뿐이지 전날의 그 괴이쩍은 말씨와 태도는 고치지 않았다. 난초 몇 가닥이 필법에 충실히 그려지고 하부와 상부가 너무나 교과서적인 비율로 자리잡은 아내의 화병보다 오히려 더 근엄한 표정이 허경렬에게 있었다.
“헌법소원을 내주라.”
“헌법소원?”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헌법재판소에 내는거......”
“뭘 원하는데?”
“우리나라 헌법에 행복추구권이 있지? 거기에 아부를 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나?”
“아부를 할 수 있는 권리라니?”
그때부터 수길의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헌법엔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권리를 침해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부? 그러면 침해받을 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명문으로 정해놓을 수 있을까? 이게 명문화된다면 우리 헌법에만 있는 권리가 된다. 그러나 어이가 없다. 아부를 할 권리...... 그게 대체 뭔가? 더군다나 그게 헌법소원으로 가능한 일인가? 입법청원으로 한다고 해도......
“난 다 알고 있어.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린다는거...... 근데 그게 나쁜 일인가? 남한테 해를 주지 않고 내가 이익을 얻는 게 죄가 되나? 세상은 제로섬 게임이라고? 내가 이익을 얻으면 남들은 손해를 보게 마련이라고? 그럼 남들의 성공은 다 자기 몫을 뺏기는 거가 되네. 난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일에 지쳤어. 정당하게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대가를 일방적으로 헐뜯을 수 있는 거야?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도 있지? 근데 그게 몇 년 전만 해도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냐. 국민에게 무슨 알 권리가 있었겠어. 그게 말이나 될 법했니. 그런데 일반화 됐잖아. 헌재판례도 국민의 알권리를 인정한다고. 아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해. 아부가 경멸의 대상이 되고 관습적으로 지탄받고 소외되고 있잖아. 아부하는 사람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지.
그러면서 아부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받을 정신적 억압은 또 얼마나 심하니.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아부할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또 욕하면서 제 스스로 피폐해지는 정신적 고통은 얼마나 심하니. 아부? 그게 정말 남의 밥그릇을 뺏는 일일까? 생각해보자. 아부를 받는 사람을 보자. 그들은 권력을 가졌지. 권력자가 스스로 아량을 베푸는 거 봤니? 바늘 끝에서 아슬아슬한 사람들이야. 자청해서 아량을 베푸는 권력은 엄밀히 말해서 권력도 아니야. 권력은 원래 그런 건데, 아무도 그에게 아부, 그래, 더 좋은 표현으로 충성으로 말하자, 충성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어차피 얻을 게 없는 대상에게 아부라도 해서 얻어내는 게 그게 남의 밥그릇을 뺏는 일일까. 애국? 그건 국가에 아부하는 거 아닌가?”
궤변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다. 학교 다닐 때 동급생들은 허경렬의 덕을 많이 보긴 했다. 명찰 사건도 그렇고, 체육, 교련 같은 맞을 일이 많은 과목도 허경렬 덕분에 그냥 넘어간 일이 많았다. 운동 잘하는 애들이 거의 없었던 수길네 반은 그가 꾸민 수작으로 대진운을 잘 타서 체육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그는 집안형편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근로장학금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들이 점심시간에 잠깐 선생들 구두를 닦아주고 등록금을 버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청 공무원이 되었다. 졸업하기 전에 이미 시청에 출근하고 있었다는 말도 있었다. 학교를 나오지 않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길과 경렬은 방위병 근무 때문에 고향에서 다시 만났다. 경렬은 석 달 고참이었다. 부대내에서도 그의 아부실력은 탁월했다. 간부들은 물론이고 관사에 사는 간부들의 부인까지 그의 손이 탔다.
수길이 돌이켜 생각해볼수록 허경렬의 아부는 일종의 대승적인 아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면서 권력자에게서 단 과실을 따내는 것이다. 물론 남보다 휴가일수를 배로 즐기는 것 같은, 혼자 욕심을 차리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모두가 편한 쪽으로 챙겨가는 편이 많았다. 수송장교를 꼬드겨 출근길에 30분 이상 산길을 올라야 하는 고충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트럭을 출근길 셔틀버스 삼도록 하는 일, 그걸 문제삼는 인사장교에게 수송부 유류고에서 기름을 빼내서 그의 오토바이에 꽉꽉 채우고 멀리 사는 애인을 자주자주 볼 수 있게 하는 일, 경계근무 서는 방위병들의 24시간 맞교대를 12시간 근무에 24시간 비번으로 돌려세우는 일, 부대 체육대회가 끝난 후에 삼류 딴따라라고 해도 밴드와 나이트 클럽 가수를 불러 흥을 돋운 일, 제대 두 달을 앞둔 방위병을 위해 사회적응 프로그램 같은 걸 만들어서 운전학원으로 출근하게 하는 일. 이런 일은 전부 자기에게도 이익이 돌아가긴 했다. 상인들에겐 커미션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운전면허가 있는 방위병들도 부대에 출근하기 싫어서 운전학원을 다시 다닐 정도였으니 그가 한 일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의 아부의 백미는 부대 ATT 동계훈련 장소를 눈덮인 산골짜기에서 바람막이로 훌륭한 인근 초등학교 교실로 바꾼 일이다. 훈련 당일, 자기가 알고 있는 산림계 공무원을 동원해서 군대 훈련이라고 해도 입산을 허가할 수 없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버섯재배하는 농민들의 민원이 들어오고 또 무엇보다 산불예방 차원에서 안 된다고 설레발을 친 것이다. 거기다 슬그머니 뒷꼬리를 달아 친절하게 인근의 초등학교 건물을 주선했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이면 한겨울 동계훈련이 얼마나 혹독한 시련인지 알 것이다. 허경렬은 장하게도 그런 고통을 줄여주었던 것이다.
허경렬은 공무원 생활도 잘해나갔다. 물론 뒷공론은 무성했다. 민원인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발길하기 싫은 관청의 문턱을 넘었으랴. 민원인들을 다독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공무원 당사자 편에서 말이 많기 나름이었다. 그래도 그가 하는 줄타기의 위험에 비하면 부작용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9급 말단 공무원에서 시작해서 그 나이에 4급인 무슨 담당관 칭호가 붙었으니 승승장구했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를 시기하는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투서가 날아가고 어쩌고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허경렬은 자기 결백을 증명했다. 그의 친화력은 적들의 뒤끝도 남겨놓지 않았다.
방송통신대를 나왔고 지방대학의 행정 대학원 석사이며 최근에는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다. 친구들은 말한다. 행정의 행자도 모르던 놈이 미달되던 시절의 공채를 보고 들어와 박사까지 따게 됐다고. 어느 다방 구석엔 그가 시장 선거를 준비한다는 말도 나돌기까지 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조직사회의 서열 상승 기회의 분석’이라는 금박 글자를 빛내고 있다. 그는 말단에서 출발하여 장관에 오르는 사람들의 유형을 분석했다. 그야말로 관료조직 내에서 하늘의 별을 딴 특이한 케이스다. 그는 또한 ‘면서기에서 장관까지’라는 책을 낸 적도 있다.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을 되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의 배후를 추적하다가 허경렬은 공통되는 점을 하나 발견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모두 따돌림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허경렬은, 자신이 물어다주는 콩고물의 단맛만 보고 뒷전에서는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다’느니 ‘사람이 근천스럽다’느니 하며 입방아를 찧어대는 빚진 자들의 자기 변명을 귓등으로 흘려넘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경렬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잘 살아왔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이런 일을 준비하는 것일까?
저는 강천시청 복지행정담당관 허경렬로 직급은 4급 지방행정 서기관입니다. (......)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어린시절 제 학비며 용돈을 벌어서 써야 했으며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해야 했습니다. 이런 시골 구석에서 셋방살이를 했던 아이는 저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의 고생을 다 말하자면 너무 구차스럽기조차 합니다. 저는 이렇게 대한민국의 최극빈 계급에서 이만큼의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조금 싼 입으로 말하자면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할 만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겪은 수모와 손가락질을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을 가지못했다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제 노력은 또 얼마나 지난했겠습니까.(......)
아부할 수 있는 권리를 청원하는 이유가 단지 제 상처를 치유받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제 이십 수 년의 공직생활도 접었습니다. 더 이상 제 자신을 지탱해 나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 조직행정학에서 말하는 규율과 통제가 조직의 구동력으로 존재한다, 좋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감히 한 말씀 드립니다. 인사행정도 좋고 조직행정도 좋습니다. 이 사회 조직을 떠받들고 있는 건 아부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는 자본가에게 빌붙습니다. 그가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천지 사방에 널린 산업예비군을 놔두고 그를 계속 고용하겠습니까? 학부모는 선생에게 선생은 학생에게 부하는 상관에게 또 상관은 부하에게(......) 아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구심력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걸 나쁘게만은 보지 않습니다. 유구한 세월동안 지켜내려온 전통사회의 미덕이라고 봅니다.
서양식 근대 법제도와 양식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을 점령해 나갔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서구식 근대 합리성이라는 논리가 기실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들 법의 통치 속에서 우리가 그나마 숨이라도 힘들이지 않고 쉴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부탁하고 상부상조하는 이런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전 감히 고매하신 헌법재판소 재판관님께 이렇게 청원합니다. (......) 물론 부당하게 뇌물을 통한 매관매직의 폐습까지 제가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윗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미덕이 깡그리 사라진 지금, 맘대로 존경할 수 있는 권리같은 걸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정글을 살고 있는 우리가 남녀노소 상하를 막론하고 생존을 위해 맘 편하게 법의 보호 아래 아부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보자는 얘깁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입법 청원서를 작성해왔다. 오히려 자그마한 자서전에 가까운 글이었다. 어릴 적부터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엄마는 일찍 죽고 아버지는 가출을 밥먹듯하고 늙은 할머니 밑에서 두 동생을 거느리고 살아왔다. 그가 학교 수업 도중에 그렇게 자주 학교를 빠졌던 것이 할머니의 병수발을 위해서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생계를 위해 아부를 겸해 잇속을 차린 것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청원서에는 그가 최근 모종의 독직사건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
그날 숙민과의 점심약속이 시 외곽에 새로 생긴 오리탕집에서 있었다. 허경렬의 청원서를 보여주다가 말이 길어져 본의 아니게 낮술까지 끼여들고 말았다.
“허경렬이 이 놈, 죽을 때까지 날 웃길 작정이네. 안그래도 그 놈 영정사진 앞에서 절할 때 웃지 않고 참아낼 좋은 방법이 없나하고 영 좌불안석이구만.”
“그래도 일리가 있지 않아?”
“촌스럽지만 그런 대로 봐줄 만은 하군. 근데 이건 좀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부도 얼마든지 있잖아. 아주 자연스럽게 극진한 아부, 아무도 그게 아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고단수의 아부...... 아무튼 헌법재판소 직원들 팔만 아플 일이지. 기각사유서 적으려면 말이야. 그래서 넌 지금 이걸 맡을 작정이야?”
“글쎄다. 이게 성문화되면 모든 법에 아부는 죄가 아니다, 라는 식의 단서조항이 들어가야겠지?”
“야, 아무리 사시정원이 늘어나서 채이는 게 변호사지만, 아직은 여기 좁은 바닥이다. 짜하면 이 업계에선 짠하고 돌아. 그게 아니라도 스포츠 신문의 깔깔 요절복통 박스기사감이지.”
“넌 그런 생각 안드냐? 너나 나나 부장검사가 되지 못하고 옷을 벗은 건 허리한번 깊숙이 꺾지 못한 죄밖에 더 있냐? 모르겠어. 난 지금 너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야.”
“넌 그래도 마누라가 친척 일가붙이를 여직원으로 들여앉히지는 않잖아. 서너 달에 한번씩 싱싱한 시앗을 들이면서 무슨 군소리가 많아? 거기다 뒷탈까지 없게 만들어주지 않나...... 그나저나 경렬이가 짤린 이유는 뭐야?”
“어떤 모자가정이 생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에 미달되는데 생보자로 지정해 줬대. 정말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굶어죽을 판인 집인 모양인데, 그걸 어떤 놈이 찔렀나봐.”
“그 정도로 순순히 당할 경렬이가 아니잖아.”
“모르지, 진짜 소문대로 시장 선거에 나선다는 말 때문에 불명예 퇴진을 시키는지, 아니면 정말로 시장에 나설지도 모르고......”
“너도 알지? 이 세상에 틀린 말 하는 새끼 한 놈도 없어. 문제는 그거야! 알아? 알긴 뭘 알아?”
숙민은 술버릇 그대로 끝장을 볼 태세로 역시 동창인 식당 주인까지 끌어앉혀 권커니잣거니 꼭지가 돌도록 고주망태가 되어갔다. 수길은 숙민이 취하면 으레 읊어대는, 열쇠 세 개의 유혹 때문에 차버린 불문과 여학생에 대한 회한과 삼류 예술가 마누라의 속박에 대한 긴 사설이 듣기 싫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식당 종업원이 불러다준 콜택시에 몸을 뉘었다. 백미러로 수길의 지친 표정을 살피던 기사가 종일 말 한마디 못해봤다는 기색으로 수다를 떨 기미다.
“시장 있잖습니까? 아, 그 놈이 실은 제 중학교 동창 아닙니까? 사실 우리 동창회에서 팍팍 밀어줘서 당선에 다시 재선된건데, 높은 자리에 앉고나서는 영판 딴 사람이 되어버렸지 뭡니까? 길이 이게 뭡니까, 글쎄. 시내 한복판 눈에 잘 띄는 데만 번지르하고 이렇게 관광객이 즐겨찾는 호젓한 드라이브 코스는 아직도 시골길이니 원. 택시기사들 처우 개선해준다고 그렇게 철석같이 공약을 내걸더니만, 민선 시장 다 헛 거예요, 그거.”
수길이 대꾸를 하든 말든 그저 차안에 누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지 기사는 종시 불평을 그칠 생각을 않는다. 시장이 이 택시기사를 기억이나 하겠는가. 애잔할 정도로 입에 거품을 문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쓴웃음을 거두어들이는 것만으로 할 도리를 다한 듯 싶어서 그만두고 말았다.
깍듯하게 목례를 하는 사무장의 태도는 그대로였지만 사무실의 공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새로온 여직원은 사무장 앞에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꼬치꼬치 따지고자시고 할 기분이 아니어서 수길은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렁찬 사무장의 목소리는 칸막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난 분명히 박카스와 보송표 물티슈를 사오라고 시켰잖아. 그런데 이게 뭐지? 젊은 사람이 그렇게 총기가 없어서 되겠어? 빨리 가서 제대로 사와.”
어지간해선 아직 여고생티를 벗지 못한 여직원의 편을 들만도 했다. 하지만 수길은 맘이 그런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약국에서 삼백 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자양강장제이지만 사무장이 입구를 무균 물티슈로 닦아 쟁반에 정성스럽게 담아 내오는 그것이 간절하게 목마르다. 수길은 오히려 입을 삐죽이며 문을 나설 여비서의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직원과의 상간을 묵인하지만 관계가 굳어지길 원하지 않는 아내, 그녀는 석 달에 한번쯤은 도자기를 구워낸다. 새로운 여직원은 아내의 새 찻잔에 커피를 끓여내오고, 수길은 그녀의 안을 상상한다. 사무장은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여직원의 기를 죽여놓는다. 사무장은 바지를 입고 나오는 여직원에게 피복비를 줘가면서 항상 짧은 정장 치마를 입도록 유도한다.
모두가 모두의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부장검사, 검사장에 오르지 못한 반편짜리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인정한다. 묵계다. 서로의 외도에 대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선은 있다. 살림을 차릴 정도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딱 세 달이다. 한 번 시작할 때마다 기백만원은 족히 드는 전통 가마를 고집하는 걸 말리지 않는다. 이삼년에 한번씩은 그보다 높은 단위 수의 돈을 깨뜨리며 인사동이며 청담동의 화랑을 빌려 전시회를 갖는다. 실수로 여직원이 애를 갖는 것까지 용인한 대가다. 또한 그녀의 바람도 정도를 넘진 않는다. 젊은 도공이 수길의 돈과 명예와 맞바꿀 만큼 근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경렬의 청원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를 그래도 살아지게 만드는 힘입니다, 없거나 부족한 자를 위한.’ 한 모금의 자양강장제가 그립다.
[당선소감/단편소설] 지어낸 말을 풀어 살게해도 되는지…
내게, 말은 거칠고 모호해서 늘 함부로 나와 타인을 상처 입힌다. 그러나 소설은 세상의 말에 당하기만 하던 나의 불만을 신기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자모 순으로 정리된 사전에서는 그리고 싶었던 인상이나 성격, 모순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새 말을 만들어 내 답답함을 해소하고 오해받았던 부분을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소설 속으로 숨어 자위하는 대신 내가 만든 말들을 풀어 세상에서 살게 해도 되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았다.
당선 소식 때문에 고민이 더 많아졌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송하춘 선생님은 한 번도 “잘 썼다”고 평가하신 적이 없지만, 언제나 그분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김인환 선생님, 이남호 선생님, 모교 선배님들, 조지타운의 마셜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 wscuba, lys1203, bluefish, yaangpaa, bearish, jun707, 동거인 tutuu. 이들에게 두고두고 갚아야 할 빚이 많다. 빚 갚을 기회를 허락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정영
70년 강원 강릉 출생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국문학) 졸업
미국 조지타운대 동아시아언어와문화학과 한국문학 강사 |
[심사평/단편소설] 당선작, 해학 넘실거리고 말맛이 산뜻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0편을 통독하고 나니 작품의 우열이 분명하게 갈라졌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세 편은 나름의 성취가 뚜렷해서 자잘한 허물이랄지 미흡을 어느 쪽이 한결 더 많이 갖고 있는가를 분별하게 만들었다.
‘ 델리셔스 쿡’(김경)은 까다로운 식탐을 일삼는 시아버지를 모시기에 지친 아내가 느닷없이 국외로 가출해버린 한 가정의 젊은 가장이 치르는 아버지 공양기이다. 음식 만들기의 진면목을 그대로 베껴내려는 기술자답게 일상의 꼼꼼한 소묘는 여간 정갈한 게 아니다. 그러나 PC를 통해 알게 된 동호인들이 한밤중에 모이는 어느 특정 음식점의 상호가 홍보용 유인물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도 부당하고, 더욱이 작중 인물이 오로지 아버지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하는 몰골은 민망하다. 이런 인물의 ‘천사화’는 멜로물의 전형적인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동두천의 새로운 생태기를 속도감 좋은 문장 감각으로 펼쳐보인 ‘칵테일 글라스’(박원)는 큼지막한 사건들을 한목에 쓸어 담으려는 욕심 사나운 작품이다.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홀대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시류의 적극적인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작품이 누리는 위상은 당당하다. 그러나 필리핀 출신의 호스티스가 술집의 홀 바닥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간다는 설정은 좋게 봐서 영상적 상상력의 지나친 발로이며, 그 주검의 전후를 서술하는 시간대가 너무 소루해서 아쉽다.
‘자양강장제’(정영)는 말맛이 산뜻한 세태 풍자소설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에서나 심지어 부부 사이의 생활 세계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첨떨기는 필요악이라는 이 역설적·반어법적 세태 비판기는 구지레한 서술을 과감히 재단해가는 생략의 묘미도 활수하게 구사하고 있다. 오기(誤記)가 몇군데 보이긴 해도 법의 양심을 지켜가야만 하는 변호사의 벌거벗은 마음과 일상을 느긋하게 조명하고 있는 데다가 특유의 시니시즘과 해학이 넘실거려서 풍자소설의 백미에 값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거듭하여 기름진 글밭을 일궈가기 바란다.
(김치수·문학평론가 / 김원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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