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혀 / 최재영
마량리* 동백 숲에 들어선다
온 천지 꽃대궐인 듯 만개한 봄날 오후
꽃 잎 겹겹이 바다가 접혀있어
한 시절 격랑을 이고 숨 가쁘게 출렁인다
동백 둥치 깊은 곳에서 물소리가 흐르고
봄맞이 나온 노인들
그 숲에 들어 회춘이라도 하였는지
낯빛이 환하게 달아오른다
주름 잡힌 눈자위 자글자글 물결이 일 때마다
쉴 새 없이 달싹이는 혀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입 안 가득 동백을 퍼 나르느라 분주한데,
해마다 봄을 키워 세월을 부풀렸다
꽃 잎 같은 혀들이 육지를 왕래하느라
마량리는 붉은 소문으로 들썩거리고
일제히 정분이라도 난 것일까
가슴에 연서 한 장씩 품고
발그레해지는 맹약의 계절
수백 그루 열락이 피고 지는 사이
저 켠 말라비틀어진 고목에
뜨거운 혀 한 장 돋아나는 중이다.
*마량리 : 충남 서천군 소재. 동백군락지
<시와창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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