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아현시장 외 1편 / 강형철

시인 최주식 2010. 2. 7. 21:22

아현시장 외 1편 / 강형철

 

아현시장에 오면 즐겁다

가게와 가게 사이 둘러쳐진 비닐에

이따금 머리카락이 스치는 기분도 기분이지만

싸구려로 쌓아놓은 스타킹 내복 양말

어물전 앞에서 세상을 향해 배꼽 내놓은

고등어 꽁치 생태

그 옆의 도미 조기 맛 농어 임연수어 계통 없는

집합이 즐겁고

평생 고추 빻는 일만 할 것 같은 방앗간

기계 사이 낀 고춧가루 털어내는 막대기 소리도 즐겁다

 

모가지가 잘렸어도 가부좌로 태평한 닭의 종아리

조그만 됫박 위 마른 다리 서로 엮으며

긍지의 잡담을 늘어놓고 있는 마른멸치

플라스틱 바가지로 쏟아져 내리는 어묵덩어리

그 무수한 엇갈림이 좋다

 

엊그제 사간 옷을 바꾸러 왔다가

싸움으로 번진 옷가게는 시끄럽고

고무함지에서 미꾸라지가 일으키는 구정물도 신난다

 

시장 입구 한쪽에선

삽십 년째 빈대떡을 뒤집는 할머니

풋고추 성성 썰어 간장통을 채우며

입술 오므려 호박전의 어깨를 짚고

 

<시선> 2008년 봄호

 

떡살은 허리부터 익는다 / 강형철

 

은행잎이 녹아내린 길 위로

얼굴을 쭈그리며 리어카가 굴러간다

온 생애를 담아 끌고 가는 아저씨

양은그릇 위로 아이들 학비가 날고

위태로운 생계비가 덜그럭거린다

 

연탄불에 가래떡을 굽고 있는 아줌마

목장갑을 끼고 아이 이마를 짚듯

떡살의 허리께를 더듬는다

노릇해야 하리라

그 옆 알밤이 먼저 튄다

 

밥집 아줌마가 신문지로 덮은 육개장을 이고 간다

이마의 땀 얼굴에서 미끄러지다

들뜬 파운데이션에 걸렸다

 

모과 하나가 떨어진다

염병할 놈

안 살라믄 흥정이나 말지

모과는 눈을 흘겼지만 아직 모과다

 

숭례문 바스라진 잔디에

햇빛 몇 개 그 육성을 웃는다

 

시집<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2002년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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