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입술 - 이성복(1952~ )

시인 최주식 2010. 3. 6. 23:01

입술 - 이성복(1952~ )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랜 후에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잊지 않겠지요 오랜 세월 귀먹고 눈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알아보겠지요 입술은 그리워하기에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움이 끝날 때까지 닫히지 않습니다 내 그리움이 크면 당신의 입술이 열리고 당신의 그리움이 크면 내 입술이 열립니다 우리 입술은 동시에 피고 지는 두 개의 꽃나무 같습니다


감각으로 쇠창살 엮어 세월을 포박했으니, 몸의 감옥에서 그대가 간수라면 나는 죄수일밖에! 또는 그대의 죄수가 되어 나는 들이치면서 내밀면서 이 부자유를 더욱 절절하게 옥죈다. 캄캄한 수심인가 몸의 깊은 호수, 그 수면 위에 동그마니 떠오른 두 입술이 서로의 터널을 잇댄다. 모습 짓기 전에 불쑥 피어오르는 이것을 낙화라 불러야 할까. 건너기에는 너무 아뜩해진 몸과 몸 사이의 절벽!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