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 김종미(1957∼ )
뜨거운 찌개에 같이 숟가락을 들이대는 우리는 공범자다
말하자면 공범자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숟가락에 묻은 너의 침도
반쯤 빨아먹은 밥풀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국물 맛에만 집중할 동안
오직 뜨거운 찌개가 있을 뿐이다
짜거나 싱거울 때도
우리는 숟가락을 잘 저어
이견 없이 간을 잘 맞추었다
어느 날 너의 숟가락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식은 찌개에서 비린내가 훅 풍겼다
맹목의 사랑은 힘이 세다? 욕구조차 조절 못하던 살의 충동들이 하나씩 잦아들고, 함께 퍼먹는 숟가락질의 속도가 느려질 때, ‘키스’라는 달콤한 사랑의 감촉은 저의 감각을 잃어버리리. 이때부터 애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비만해져 가는 뻔뻔한 상대가 되어 서로의 앞자리에 마주앉는다. 그렇다면 사랑의 노력은 신기루에 기대는 것처럼 허망한 일일까. 이 시를 읽으니 등 뒤로 감춘 역겹고 메스꺼운 사랑의 살 비린내가 훅 끼쳐오는 것만 같다. <김명인·시인>
'詩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신목욕탕 - 박미산(1954 ∼ ) (0) | 2010.03.31 |
---|---|
완화삼(玩花衫) - 조지훈(1920∼ 68) (0) | 2010.03.31 |
장수산(長壽山)1 - 정지용(1902∼50) (0) | 2010.03.31 |
축, 생일 -신해욱 (1974∼ ) (0) | 2010.03.21 |
나의 가난은 - 천상병(1930~1992) (0) | 201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