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장수산(長壽山)1 - 정지용(1902∼50)

시인 최주식 2010. 3. 31. 23:02

장수산(長壽山)1 - 정지용(1902∼50)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長壽山)속 겨울 한밤내 ―


이 시는 얼핏 보아 눈에 파묻힌 산속의 정밀(靜謐)을 그려낸 듯하지만, 감정을 제어하고 시련을 감내하려는 시인의 다짐으로 작품 전체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정신과 육체의 가장 피폐한 지점에서도 인간적인 번뇌를 수긍하고 그 갈등을 끌어안고 가려는 한 견인주의자의 내면적 결의가 아프게 읽히는 것이다. ‘장수산’은 황해도 재령군에 위치한, 멸악산맥에 딸린 산이다. 높이는 747m에 불과하지만 ‘황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의 선명한 산악미를 자랑해 보인다 한다. 가서, 보고 싶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