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브라자 / 유행두
엄마는 짝젖이었다
암 병동에서 한쪽을 잃었다
축 늘어져 출렁이는 한쪽 젖에
열두 개의 눈동자를 조롱조롱 달고 살았다
아버지 없는 속 빈 브라자 때문에
한쪽 가슴이 늘 허전하였다
왼쪽 삶이 기우뚱거렸다
오른쪽으로 아이를 잘 안지 못하는 나도
왼쪽 젖만으로 아이를 키웠다
젖몸살을 할 때마다
제대로 부풀지도 못하고 딱딱해져가는
오른쪽 가슴이 늘 불안하였다
부풀었다가 꺼진 젖은 쪼글쪼글해져
삶이 모조리 기우뚱거렸다
엄마가 입었던 브라자는 길표
그래서인지 엄마는 인적 드문 산골
산까마귀 지나는 길가에 드러누웠다
초경을 막 끝낸 딸아이의 야한 브라자처럼
일평생 입어보지도 않은 초록 브라자
오른쪽 세월을 텀벙텀벙 건너면서
이제는 뽕이 내려앉은 브라자
비어 있던 아버지 엉큼스럽게
무덤 깊숙이 팔을 뻗어
어머니 브라자 후크를 투둑, 벗기는지
구름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낸 산까마귀가
키득거리는 소식을 떨어트려 놓고 갈 때도 있다.
시집 <태양의 뒤편> 2009.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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