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모일/ 박제영
모월모일 날씨 우울 시베리아를 건너온 북서풍이 골목을 휘돌아 나가고 있음, 이렇게 시작하자,
몇 건의 계약이 취소되고 직원 월급을 위해 은행 대출계에 다녀온 이야기는 빼버리자, 다음 달이
면 회사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말도 진부하다, 오늘도 어제처럼 퇴근했고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 집
에 돌아왔다고, 저 풍경들, 말들이 매립된 헌책방, 시간들이 파업중인 시계방, 구두가게의 저, 길
위에서 닳지 못하고 세월 속에서 낡아진 구두들, 그리하여 좌판 너머 풍화되고 있는 표정들만 지
나면, 그래 저 골목길만 지나면 거기 나의 집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기록하자, 生이 휘발되었
다는 불길한 이야기는 쓰지 말자
모월모일 영구차 한 대가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푸르른 소멸-플라스틱 플라워』 (문학과경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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