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 / 이정록
개나리나무 활대로 아쟁을 켠다
아쟁은 아버지 같다, 맨 앞에 앉아 노를 젓지만
물결소리는 잦아들고 거품만 부푼다
황달에서 흑달로 넘어간 아버지
백약이 무효인 개나리 울 아버지
해묵은 참외 꼭지를 빻아서 콧구멍에 쏟아붓고는
숨넘어가도록 재채기를 한다, 절대 안되어
사약이여 사약, 한약방에서 절레절레 고갤 흔든
극약처방이 노란 콧물 뿜어올린다
오십년 묵은 아버지 콧구멍, 개나리꽃 사태다
이렇게 살아 뭐해, 두두두 무너지는 북소리
몸 뒤집은 아쟁이 마룻장을 두드린다
이제는, 배도 노도 가라앉은 지 십수년
속 빈 개나리나무 활대로 아쟁을 켠다
개나리나무는 내공 깊은 속울음이 있다
마디도 없는 게 악공이 되는 까닭이다
개나리 꽃그늘에 앉으면 자꾸만 터지는 재채기
아쟁 소리 위로 노란 기러기발 날아오른다
다시 황달로 돌아온 아버지처럼, 봄은
극약처방 없이는 꼼짝도 않는다
시집<정말> 2010. 창비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단추 / 손택수 (0) | 2010.07.28 |
---|---|
배고픔의 사각지대 / 나태주 (0) | 2010.07.28 |
대풍류 / 홍해리 (0) | 2010.07.28 |
모월모일/ 박제영 (0) | 2010.07.28 |
능소화를 피운 담쟁이 / 강인한 (0) | 2010.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