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썩는다는 것에 대한 명상 / 신병은

시인 최주식 2010. 9. 1. 22:48

썩는다는 것에 대한 명상 / 신병은

 

  두엄을 져 내면 거기 속 썩인 흔적 환하다

  팽개쳐진 것들의 잃어버린 꿈과 상처 난 말들이 오랫동안 서로의 눈빛을 껴안고 견뎌낸 시간, 맑게 발효된 생의 따뜻한 소리가 있다 곁이 되지 못한 시간의 퇴적 속에서 헐어진 채로 낯선 외출을 준비하는 겨울 묵시록, 아직 할 말이 많은 세상의 행방불명된 말들이 다시 한 번 뜨거워지기 위한 기다림이라고 염치도 없이 환하게 닿아오는 맑은 생각,

  썩는다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뭔가로 다시 태어나고픈 것들이 젖은 기억 껴안고 산란한 눈부신 겨울 우화羽化, 맑게 썩어 향기된 함성들이 하얗게 겨울들녘의 혈맥을 세운다

 

  꽃이, 노란 봄꽃이 되고 싶다고

 

 

시집 <잠깐 조는 사이> 2010. 고요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