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서정시학작품상' 수상작
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모든 육체는 어둠을 틀에 부어 주조해낸 것
어둠의 생김새가 육체를 가르는 것 어둠의 콧날이
좀 더 두툼해지면 분꽃은 나팔꽃이 되고
다리가 길어지면 뱀은 기린의 육체가 되지
어둠의 등에 혹이 돋자 사람들은 그 어둠의 생김새를 가리켜
낙타라 불렀다
곁을 이룬 불투명 그 안을 들어가는 건 오직 목숨의
해부와 정지뿐
목숨을 지키는 건 어둠의 모습을 해체하지 않는 것
제 것이어도 단 한번 들어가 본 적 없는,
어둠으로 나선의 계단을 내고 검은 문을 단 집들
기차 같은, 밤길 속에서도 차창 안 불빛 속의 얼굴들
투명 유리 너머 들여다보이는 기차 같은 것, 아니어서
모든 생은 끝내
제 몸 밖에서의 풍찬노숙인 것
꽃잎들은 한없이 얇고 납작한 어둠의 무게를 가져
바람처럼 아름다운가
그러나 어둠이 적을수록 개미허리처럼 약한 것
그리하여 밤 밀물지기 전 석양을 사랑하듯
어둠의 숙명을 많이 아는 자일수록
나 사랑하는 것이니
거울 속 저편의 어두운 나신(裸身)처럼
김경미 시인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2005년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쉿,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등과 사진에세이집 『바다, 내게로 오다』『막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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