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하반기 <시와반시>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얼룩말 보도 / 최세라
여자와 그 남자는 같은 지붕 아래 있어요 녹색 신호등 안의 남자,
머리가 깨진 채로 항상 어디론가 발을 떼는 이유는 자주 깜빡이기 때문일까요
그 윗칸에서 늘 적자 가계부를 쓰는 여자,
한 사람의 신호가 꺼져야 다른 식구의 불이 들어오는 집
알이 몇 개 빠진 남자의 신호에 맞춰
까만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보도를 건너서 가요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지나는 동안은
얼룩말들이 무릎 사이에 젬베를 끼고 두드리는 시간
남자의 초록불이 깜빡거리기 전에
서둘러야 해요, 사실 이곳은 세렝게티 초원이고
가로수 뒤편으로 누런 가죽 맹수가 도사리고 있거든요
붉은 울음으로, 여자의 신호가 켜지고
오토바이들이 동시에 스프링복처럼 튀어나와요
얼룩말 가죽 아래 실핏줄들이 부여잡은 땅 덩어리는 혹시
아스팔트 기름이 깊숙이 배어든 검은 대륙이 아닐까요
한 지붕 아래 보색으로 엇갈리는 신호들은 또
세렝게티의 순한 짐승들을 덮치는 맹수의 눈빛이 아닐까요
길을 건넌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도
내 마음은 아직 얼룩말 보도 위를 서성이고 있어요
최세라 시인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학 평생교육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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