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에서/박영환
울어 밤길 예놋는
강 가슴에 파묻혀
지새우는 밤하늘이
잠기고 또 잠길 때
어소御所의
여린 문풍지 얼마나 떨었을까
보았느냐
우리 님 흐르는 눈물을
들었느냐
폐부에 차오르는 흐느낌을
짓무른 사연을 안고
관음송 觀音松 붉게 젖다
그리운 왕비여
만날 날이 언제일까
망향탑望鄕塔에 팔 뻗지만
허공 위에 쓰러지니
돌 하나 올리는 일도
천근으로
무거웠다
지난 일 그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두견새는 피눈물 흘리지만
모두 다 가슴에 묻어
말이 없는
장릉莊陵이여
*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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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至尊)께서 고개 넘을 때 눈이 내리고, 마을 지날 때 비가 내렸으리라, 먼 길 잠시 멈추고 다시 돌아갈 기약없는 한양 땅을 향해 눈물 지었으리라. 이 작품은 평이한 논리를 펴면서도 감동적인 울림이 있는 시로서 상(想)과 의(意)의 긴밀한 결합이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그 비극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안심과 오늘도 살아 있다는 즐거움과 이 험난한 현실에서 언제든지 내가 그 배역으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빠져든다. 어쩌면 이 시의 모습은 미움과 질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전개되는 인간과 자연과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생각케 하는 이 한 편의 시 속에 펼쳐진 슬픈 드라마는 누가 연출하는 것인가?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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