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청령포에서/박영환

시인 최주식 2011. 5. 20. 01:51

 

청령포에서/박영환


울어 밤길 예놋는

강 가슴에 파묻혀

지새우는 밤하늘이

잠기고 또 잠길 때

어소御所의

여린 문풍지 얼마나 떨었을까


보았느냐

우리 님 흐르는 눈물을 

들었느냐

폐부에 차오르는 흐느낌을   

짓무른 사연을 안고

관음송 觀音松 붉게 젖다  


그리운 왕비여

만날 날이 언제일까

망향탑望鄕塔에 팔 뻗지만

허공 위에 쓰러지니

돌 하나 올리는 일도

천근으로

무거웠다


지난 일 그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오늘도

두견새는 피눈물 흘리지만

모두 다 가슴에 묻어

말이 없는

장릉莊陵이여

 

     *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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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至尊)께서 고개 넘을 때 눈이 내리고, 마을 지날 때 비가 내렸으리라, 먼 길 잠시 멈추고 다시 돌아갈 기약없는 한양 땅을 향해 눈물 지었으리라. 이 작품은 평이한 논리를 펴면서도 감동적인 울림이 있는 시로서 상(想)과 의(意)의 긴밀한 결합이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그 비극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안심과 오늘도 살아 있다는 즐거움과 이 험난한 현실에서 언제든지 내가 그 배역으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빠져든다. 어쩌면 이 시의 모습은 미움과 질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전개되는 인간과 자연과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생각케 하는 이 한 편의 시 속에 펼쳐진 슬픈 드라마는 누가 연출하는 것인가?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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