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사에서/이루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찡그리며 말하면서도 얼굴 붉히시는 당신
거기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하늘 빛 담아 곱게 물든 산자락도
계곡의 쉼 없는 노래
아낌없이 들려주시니
한참을 앉아 있어도 지겹지 않아요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가게 만드시는 당신
부끄러움 깊이 반성하고 마음을 쓸어 담아요.
물 안도 물 밖에도 당신이 있어 주심에
오늘도 착하게 살아야지 생각해요
마음줄 잡아당겨 당신손길 머문 그 곳에
휘휘 내저어 행궈 놓고
가슴 속 염증도 죄다 짜 피고름 버렸어요.
얼마나 갈까요
장담은 못 하지만 버리고 싶을 때 마다
찾아올게요
무거운 머리 내려놓고 싶을 때
당신이 안아 주셔요.
가슴속에서 젖은 숨 쉴 수 있도록
제 자리 늘 비워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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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는 이루다 작가의 작품은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 풍요로움과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한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지면에 발표한 <가을산사에서>는 가슴 깊이 숨어있는 순수함을 끄집어내는 대중성과 너를 통해 나를 비춰주는 사상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가을 산사에서 보고 느낀 맑고 깨끗한 감정을 시심에 담아 욕심내고 성내는 혼탁한 세상을 향해 내려치는 죽비인양 잠든 마음을 일깨워 준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스스로 알아가게 만드시는 당신/부끄러움 깊이 반성하고 마음을 쓸어 담아요.’ 같은 싯귀는 연기사상과 인과사상을 상징적으로 함축하여 어느새 눈가를 촉촉히 젖어들게 만든다. 이 작품을 감상하며 스스로의 호흡을 따라 오늘도 착하게 살아야 할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나의 존재는 깨어도 깨어지지 않을 행복에 빠지게 된다.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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