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시집 ‘찔레’(북인) 수록
시인이 20여년 전 뉴욕에 머물며 쓴 시들을 묶었던 두번째 시집 ‘찔레’가 복간됐다. 얼마전 새벽의 뉴욕 거리를 걷던 시인은 “여전히 활기찬 거리에서 사라진 단 한 사람, 고독하고 치열했던 젊은 나를 생각하며 가슴 아린 비명을 삼켰다”고 한다. 청춘을 돌아보면 늘 떠오르는 사람, 조금 더 다가서지 못했기에 서로 꽃이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장미과의 ‘찔레’를 통해, 그 가시 돋친 아름다움을 보며 위안을 얻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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