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詩

2012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시…최호빈 그늘들의 초상

시인 최주식 2012. 1. 4. 22:26

 2012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시…최호빈 그늘들의 초상

 

[2012 경향 신춘문예]시 당선 소감-“멋진 병, 현기증이 나에 대한 믿음 되살려”

 

■ 최 호 빈 : 1979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한 인간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전부 이해하기 위해 한 인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되길 바랐다. 한때 내 몸은 그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반항하기 위해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영혼이 아니라 그의 죽은 몸을 닮고 있었다. 스무 살의 겨울, 몽마르트 언덕에서 길을 헤매던 중 한 묘지로 들어갔고 처음 본 공동묘지에 그를 내려놓았다. 파리의 지붕들을 뛰어다니던 그에겐 밟고 다닐 무덤들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빈자리가 말을 건넨다. “나는 침묵과 밤에 대해 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에 유의했다. 나는 현기증을 응시했다.”

 

얼마 전 흑백의, 내 머릿속 사진을 보았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커다랗고 외로운 눈(目)이었다. 그 눈은 대답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질문만을 내게 건네는 듯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눕거나 일어날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내 안에 살았던 기억과 감정들이 깨어나면서 나에 대한 불신들 사이에 나를 믿게 만들 씨앗을 흩날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멋진 병”에 걸렸다. 다행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마움과 건강히 오래 지켜봐주길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전한다. 시 쓰는 길을 열어주시고 큰 관심을 가져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곧’이라는 말로 격려해주신 선후배님께 감사드린다. 시 속에 숨어 있으려는 나를 밖으로 꺼내주신 멘토 권혁웅, 조연호 그리고 금요일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크고 달콤한 힘에 감사한다. 다른 내일을 열어주신 도종환, 박주택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2012 경향 신춘문예]소설 심사평

 

-“주제 장악하는 힘, 꾸밈 없는 인물과 주제 탐구 돋보여” 황석영·최인석 소설가

 
소설에서 장식적인 요소는 언제나 작가 자신에게 재앙이다. 많을수록 더 큰 재앙이 된다. 더구나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가 결여된 채로 꾸미는 데 열중하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멋을 부린 문장이나 부적절한 비유 같은 것으로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본심에 오른 스물세 편 가운데에는 상식적 수준에서 시작되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마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이국적 배경이나 소재를 끌어들인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파쿠르’ ‘출구’ ‘방’이었다. 각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 어떤 점은 새롭고 어떤 점은 낯익었다. 야마카시(고층건물 사이를 옮겨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디스토피아, 실직과 해고 같은 이야기들, 영화를 통해 소설을 통해 무척 자주 마주치게 되는 소재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는가, 그 지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났다.

 

▲ 소설을 심사 중인 황석영(왼쪽), 최인석 작가. 강윤중 기자
‘파쿠르’는 독사와 전갈의 관계를 포함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펼쳐나간 점은 돋보였으나 작가 자신의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출구’는 단정한 문장으로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으나 이야기가 끝내 평범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주제를 장악하는 힘, 꾸밈 없이, 흔들리지 않고 인물과 주제를 탐구해나간 점에서 ‘방’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는 오랜 논의가 필요치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