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ESSAY] 구슬댕댕이 겨울눈과 송양나무 열매

시인 최주식 2012. 3. 23. 22:53

 

[ESSAY] 구슬댕댕이 겨울눈과 송양나무 열매

  • 김태영 식물연구가 · '한국의 나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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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종 송양나무 찾기 위해 남해 외딴섬만 10번 넘게 가는 등
    산·숲을 헤맨 끝에 나무도감 펴내… 세상 보기 싫어 산에 올랐지만
    숲은 삶을 소중히 여기라고 주문… 나무 착취하는 인간, 겸손해져야

    김태영 식물연구가 · '한국의 나무' 저자
    눈보라가 심하게 치는 어느 겨울날, 나는 강원도의 인적 없는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구슬댕댕이라는 나무의 겨울눈[冬芽]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온 산의 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계절에, 그 많은 나무 중에서 별 볼품없는 이 나무를 따로 가려서 찾아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쳐가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수없이 되물었다.

    지난 10년간 이런 '고행(苦行)'을 수없이 겪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들 실체를 확인하고 그 생태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제주도에만 60번 넘게 갔고, 울릉도에도 10번 이상 찾아갔다. 울릉도에는 아예 한 달 동안 들어앉아 살기도 했다. 국내에는 알려진 자생지(自生地)가 거의 없는 송양나무의 꽃과 열매를 확인하겠다며 남도 끝에서 배를 타고 세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외딴섬을 10번이나 찾아간 적도 있다.

    그러다 태풍을 만나면 바다가 잔잔해질 때까지 그 섬에 발이 묶여야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백두산과 두만강 유역, 일본의 대마도까지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이렇게 집요하게 나무를 찾아다니다 보니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 적도 있었고 수시로 재발하는 고질병을 얻기도 했다. 모두 우리 땅에 자생하는 나무들을 정확히 소개하는 도감(圖鑑) 한 권을 만들어보겠다는 소망에서였다.

    어릴 적부터 산과 인연을 맺고 지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산에 미친 것은 30대 초반부터다. 남들이 미래를 설계하느라 한창 바쁠 나이 서른 즈음에, 나는 오히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환멸에 빠져 있었다. 그 당시는 산을 오르는 것만이 제정신으로 일상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뒤늦게 등산학교에 입교하여 암벽 등반을 배웠고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산을 찾고 또 찾았다. 등반에 제법 익숙해질 무렵, 불현듯 의문이 생겼다. "과연 내가 산과 자연에 대해 얼마나 아는 걸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때부터 내 배낭 속엔 암벽 장비 대신 자연도감과 카메라가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풀꽃 이름을 하나하나 배우는 것이었다. 야생화를 어지간히 섭렵하고 나니 그다음엔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를 보는 안목이 조금씩 생기자, 국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식물도감이 오류투성이임을 발견하곤 충격을 받았다. 식물에 대한 기본 정보는 고사하고, 실은 사진부터 엉터리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나무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일본에서 나온 도감이나 중국 식물지(誌)까지 뒤져봐야 했다.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숲을 답사하며 나무를 공부하다가 우리 땅에 살고 있는 나무들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내 손으로 직접 정리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10년 전쯤 일이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5년 전 식물분류학 박사 학위 과정을 마친 신진 연구자를 만나면서 더디기만 했던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마침내 지난해 말 '한국의 나무'라는 책으로 작은 결실을 보았고,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기대 이상의 과분한 호평을 받았다.

    오랜 시간 나무를 찾아다니다 보니 내게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예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나무뿐 아니라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똑같은 이름이 붙었어도 이 세상에는 단 한 그루도 같은 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또 겉으로 보기에는 마냥 평온할 것 같은 저 조용한 숲 속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생명체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전쟁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숲은 나에게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전국 각지를 주유하면서 문득 깨닫게 된 불편한 진실 때문에 마음이 편찮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 가운데 생존을 위협받는 희귀 수종이 적지 않고, 앞으로도 그 수는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 때문이다. 나무 처지가 이럴진대 나무와 숲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자연 속 다른 동식물의 수난은 오죽할까. 만일 이 모든 게 자연을 착취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되었다면 우리는 좀 더 겸손하게 이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억지 논리를 동원하면서 자연 파괴를 정당화한다면, 장래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에게 과연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숲이 파괴되고 나면, 문명도 덩달아 파국을 맞는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의 교훈임을 다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