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寓話)
점심 때 소머리국밥 먹고
트림하면 소 울음소리 난다
―샐러리맨은 소의 후손이야
―넥타이는 신종 고삐지
거울 속
음매음매 울며
나를 쳐다보는 소 한 마리
콘크리트로 무장된 도시
더 이상 갈아엎을 수 없다
―발굽이 다 닳았군
―가죽도 헐거워졌어
나는 또
도살장에 끌려가듯
엘리베이터에 몸 싣는다
-장수현(1973~ )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그중 최근의 말이 '피로사회'일 것이다. 성과 사회의 긍정성 과잉에 따른 자기 성취 욕구가 피로를 누적하며 우울증 같은 증후군을 양산한다는 진단이다.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지적이 무엇보다 섬뜩하다. 쓰러질 때까지 일하며 자신을 착취한다면 현대인은 분명 성공의 노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삶 자체가 그런 구조에 꿰어져 가고 있다.
넥타이라는 신종 고삐, 누가 이 굴레를 쉬 벗을 수 있을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숨이 턱턱 막혀도 눈뜨면 일터로 가야 한다. 거기서 또 발굽이 닳도록 자신의 삶과 꿈을 갈아(耕)야 한다. 오늘도 소의 후손들이 줄줄이 점심을 먹고 울음을 되새김질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리라. 조금 더 상승하는 자신을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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