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5/김남조
무게를 견디는 자여
나무여
새둥지처럼 불거져 나온 열매들을
추스르며 추스르며
밤에도 잠자지 않네
실하게 부푸는 과육
가지가 휘청이는 과실들을
들어 올려라
들어 올려라
중천의 햇덩어리
너의 열매
무게가 기쁨인 자여
나무여
늘어나는 피와 살
늘수록 강건한 탄력 장한 힘이더니
그 열매 추수하면
이 날에 잎을 지우네
―김남조(1927~ )
이즈음은 나무들 곁으로 가야 한다. 귀 기울이면 분주한 나무의 노동요(勞動謠) 소리가 들린다. 뿌리로부터 빨아올리는 물기와 양분들, 가지 끝에는 금방이라도 연두의 잎사귀들이 학교 파한 아이들처럼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불그스레한 꽃봉오리가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가을이 오버랩된다. 햇덩어리 하나씩 매달고 서서 웃는 사과 나무의 잇몸 붉은 웃음소리를 생각해본다.
무게가 기쁨인 삶을 생각한다. 젊은 아비가 오랜 출장에서 돌아와 아이를 안아볼 때 부쩍 늘어난 무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던가.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이 짐은 기쁨인가 고통인가, 점검해 본다. 늘어나는 짐에 '강건한 탄력'이 생긴다면 그건 기쁨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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