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질녘 저 밭은 무엇인가
해질녘 저 흐릿한 논길은
해질녘 밭둑을 돌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거미 같은 저 애들은 무엇인가
긴 수숫대
매양 슬픈 뜸부기 울음
해질녘 통통통 경운기의 짐칸에 실려 가는
저 텅 빈 아낙들은 무엇인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오는 저 굽은 불빛은 무엇인가
해질녘 주섬주섬 젖은 수저를 놓는
손
수레국화 옆에서 흙 묻은 발목을 문지르는 저 고단함은
해질녘 내 이름 석 자를 적어온
이 느닷없는 통곡은 무엇인가
해질녘, 해질녘엔
세상 어떤 것도 대답이 없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나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해질녘엔 그저 멀리 들려오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허밍, 허밍
해 질 녘은 낮밤의 경계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이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다. 처연하고 막막한 이 시간에 논밭들은 흐릿하고 아이들은 거미와 같으며 들녘엔 또 슬픈 뜸부기 울음. 모든 것이 비어 있고 모두에게 정처가 없다. 시의 인물은 이것이 “느닷없는 통곡” 때문이라고, 저물녘에 찾아온 뜻밖의 부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먼 곳의 생명 하나가 스러지자 저렇게, 세상 풍경에 핏기가 가신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별이,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이 무너진 애도의 순간에 나온 말들은 너무 경황없어 마치 넋 놓은 주문 같다. 시인은 환청을 몸으로 받으며 방언 중인 병자 같다. 그의 병이 더 깊어지기를. 그래서 더 환해지기를. 오늘 밤엔 이 몸도 가깝지 않은 곳에 조문하러 가야 한다.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