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는
얼지도 늙지도 않는
울 너머 누님 손처럼
오늘도 또 뻗쳐 들어와서
동지 보리 자라는
포구 나룻목.
두 달 전의 종달새
석 달 뒤의 진달래 불러
보조석공 아이는
돌막을 빻고
배 팔아 도야지를 기르던 사공
나그네의 성화에 또 불려 나와
쇠코잠방이로
설날 나그네를 업어 건넨다.
십 원이 있느냐고
인제는 더 묻지도 않고
나그네 배때기에
등줄기 뜨시하여
이 시린 물 또 한 번 업어 건넨다.
바다에 연한 외진 나루터 풍경이 설인데도 고즈넉하다. 변함없이 밀물이 들고, 겨울보리는 파릇파릇하고, 돌 쪼던 아이는 흥얼대며 그냥 돌을 쫀다. 하지만 강 건너에 고향이 있는데 찾을 이가 없겠나. 물이 있는데 건너는 사람이 없겠나. ‘운송업’에서 ‘축산업’으로 전환한 마음 약한 어제의 사공이, 제 천직(天職)을 저버리지 못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또 찬물에 발을 적신다. 미당 중기의, 눈에 잘 안 띄는 작품이다. 시인은 영욕의 세월을 살다 갔으나, 그의 시는 남아서 이렇게 의젓하다. 한 번 더 읽어 드리고 싶은 대목, “나그네 배때기에/ 등줄기 뜨시하여/ 이 시린 물 또 한 번 업어 건넨다.” 좋다. 어디에도 꿰맨 자국이 없는데, 참 좋다.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