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정념의 기(旗)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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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의 기(旗)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없는 것모양 걸려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펄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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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움직이는 갈등, 번민을 넘어서서 영혼의 순수함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한 시이다. 마음을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비유하여, 간절한 소망과 기도의 자세를 가시적(可視的)으로 형상화했다.
김남조의 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는 `사랑'이다. 초기시에서는 섬세한 감성과 정감으로 사랑의 그리움을 노래하는 작품이 많았고, 후기시에 와서는 종교적 성향이 짙어지면서 사랑의 의미를 지상적(地上的)인 것에서 보다 근원적, 초월적인 방향으로 심화시키는 쪽으로 변화했다. 위의 작품에는 이러한 후기시로 옮겨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에서 시상의 주축이 되는 두 요소는 `스스로의 / 혼란과 열기'라는 구절과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 고요한 꽃잎인 양 쌓여가는 / 그 일'이라는 구절 속에 담겨 있다. 앞의 것이 인간 존재의 욕망, 번민, 갈등에 해당한다면, 뒤의 것은 이러한 것들을 고요하게 다스리고 고요한 내면 세계의 평화를 성취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마음을 은유하여 표현한 기(旗)는 바로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앞의 요소들을 극복하고 후자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노래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일반적인 연가(戀歌)의 님과 달리 뜨거운 애정의 상대자가 아니라 모든 열정으로부터 초탈한 마음을 지닌 벗이다. 즉 열정을 초월하고, 지극한 비애조차도 잔잔하게 다스려서 `맑게 가라앉은 /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에까지 도달한 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경지가 곧 이 작품이 지향하는 궁극적 지점이다. (김흥규, 한국현대시를 찾아서, 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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