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인터넷 시문학의 현주소와 전망

시인 최주식 2012. 10. 22. 22:12

인터넷 시문학의 현주소와 전망

한 성 우
(시인, 문학평론가, 서울여대강사)


인터넷과 문학환경의 변화

21세기로 진입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보화가 한층 더 심화되어감에 따라 PC와 인터넷의 사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에 신문 지상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PC보유와 인터넷 사용은 전 세계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로 우리 나라의 정보화 수준은 세계적이랄 만하다. 이제 웬만한 일은 집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여 신속하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홈뱅킹이나 홈쇼핑, 사이버대학, 재택 근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단 인터넷은 이러한 일상 생활의 도구로써 뿐만 아니고 좀 더 차원 높은 창작이나 학술 활동의 유익한 매체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인터넷은 인간의 외형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의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문학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바로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즉, 컴퓨터와 초고속 광통신 망을 사용한 사이버문학(명칭 자체도, 사이버 문학, 전자문학, PC통신문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음)은, 아직은 시작 단계라서 그 개념 정립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우리 문학과 문단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오프라인, 즉 종이책이 아닌 순수한 온라인 문학지(웹진)는 물론이고, '야후', '다음', '한미르', '네띠앙', '네이버', '엠파스' 등 수많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문학 전문 사이트가 개설되어 있다. 또 각 문학 사이트 안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학 동아리와 개인 홈페이지가 등록되어 있다. '다음'(daum)의 문학 사이트에만도 대략 400∼500개 정도의 문학 동아리와 개인 문학 홈페이지가 개설되어 있다. 이번에〈오늘의 문학사〉에서 첫 인터넷 사화집(?)을 낸〈시인나라>도 그 중의 하나로 등록된 시문학 동호회이다.
'시인나라'의 개설자이자 운영자이기도 한 양수창 시인의 말을 빌리면, 사이트를 지난 1월 29일에 개설하여, 그동안 등록 회원이 100명 선에 머무르다가 8월 이후, 급성장하여 8,000명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회원들이 가입하고 있어서 10,000명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한다. 정말로 오프라인 문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회원 숫자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다른 사이트에 이중, 삼중으로 등록된 사람이 있을 수 있을 테지만, 이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우리 나라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엔 어림잡아 수만 명은 되리라고 본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의 등록 회원수가 5∼6천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사이버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 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학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문학의 죽음'이니 '문학의 종말'이니 하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들려오고 있다. 문학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정보화로 상징되는 문학의 외부적 환경의 변화가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곧 기존의 오프라인 문학 인구의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문학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터넷문학 사이트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오프라인 문학 주변은 텅 비어 있다. 우리 문학의 새로운 활로는 바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온라인 문학에서 찾아야만 한다.

오프라인/온라인 문학의 특징 비교

우리 문학이 현재 봉착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의 종이책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문학과 새롭게 등장 인터넷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문학을 분석해서 그 장 단점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비교 분석한 결과를 놓고 볼 때, 온라인 문학은 오프라인 문학에 비해 열린 문학, 열린 문단이란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온라인 문학은 문학에의 접근성, 향유성, 공유성, 전달성, 피드백 등이 오프라인 문학에 비교가 되질 않는다.
온라인 문학에서 어느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시를 써서 발표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오프라인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습작과 등단 절차를 마치고 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해 본 사람은 누구든지 오프라인 문학에서 창작을 하고 시인으로 행세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문학의 문제점은, 작품의 질적 수준이다. 이것은 회원 가입의 자격이나 조건이 따로 존재하지 않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나, 모든 회원의 작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론 기성 시인의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온라인 문학을 작품 수준이 낮은,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하 하는 것은 잘못된 경향이 아닐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인터넷 문학은 다수의 회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다 보니 수준 차이가 사전에 조정되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게 과장되어 보이는 것이지, 결코 유치한 아마추어 수준이라고만 볼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이 사화집에 실린 시편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피리


내가 하나의 막힌 대나무였을 때
나는 그대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내어 그대를 부르려하여도
그대의 이름은 막힌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나는 온몸으로 울며 그대를 부르는 데도
바람결에 흔들린다고 그대는 말할 뿐입니다
나는 이제 그대 위해 팔다리 모두 잘라 버리고
파인 살을 떨며 그대를 부릅니다
마디마다 갇혀 있던 그대 이름을 쏟으며
원 없이 원 없이 그대를 부릅니다
뚫린 여덟 구멍마다 흐느끼며 부르는 그대 이름
깡말라 버린 몸뚱이에 아픈 구멍이 뚫리므로
이제 나는 당신을 목놓아 부릅니다

― 황봉학, [피리] 전문

비교적 단순한 비유와 평범한 시어와 싯구로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피리'를 매개로 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감정이 다소 밖으로 노출되고 산문적인 문장으로 시적 긴장이나 함축성이 풀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리움'이란 서정을 '피리'라는 비유적 보조관념을 통해서 은유화 시키고, 전체적으로 시어를 다루는 능력이나 주제의 형상화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을 견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필자는 황봉학 시인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지만, 웬만한 오프라인 문학의 기성 시인들의 창작솜씨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골목을 걷다.


그때, 달빛이 무심하게 흩어지고 있었는데

삼류극장 간판 속 알몸의 여자가
초점 없는 눈을 땅 위로 떨어뜨린다
버려진 껌처럼 길 위에 박힌다

어금니의 생채기가 남은 채 버려진 껌
그 질긴 끈적거림을 바닥에서 떼고 있었는데,
구두 소리는 발자국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는데

― 김유신, [골목을 걷다] 일부

앞의 황봉학 시인의 시작품과는 달리, 도시의 골목길 옆에 있는 삼류극장의 객체적인 모습을 話者의 간섭이 배제된 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적 주인공인 여자의 모습이 '버려진 껌'으로 은유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 껌이 단순한 껌이 아니고 '어금니의 생채기가 남은' 껌이다. 따라서 '간판 속 알몸의 여자'는 '어금니의 생채기가 남은 채 버려진 껌'과 등가 관계를 형성하여, 인간적 주체를 상실한 '도시의 여자'(여자와 같이 피억압적이고 연약한 사람들의 포괄어)의 체념과 절망, 슬픔 등의 의미망을 구축하고 있다. 상상력 속에서 펼치는 이미지의 전개와 구조가 기성 시인 못지 않게 精緻한 면이 엿보인다.

지금까지 이 사화집에 실려 있는 두 시인의 시작품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지만, 이 사화집의 다른 시인들의 작품도 전반적으로 기성 시인들의 시적 수준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시가 수준이 낮다거나 아마추어리즘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杞憂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온라인/오프라인 문학의 차이는 결코 작품 수준의 차이가 아니고 작품의 표현매체와 전달 수단의 차이에 불과하다. 오프라인 문학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작품을 쓰고 그것을 잡지, 신문, 동인지 등에 게재한다면, 온라인 문학은 컴퓨터의 모니터와 키보드,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창작하여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지 시창작의 표현 및 발표상의 이러한 유리한 점 때문에 인터넷 문학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면 과연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반대로 기존의 오프라인 문학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는 달리 말해 기존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거부감인데 그 구체적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독자의 저변 확대와 시창작의 활성화

기존의 오프라인 문학으로부터 독자들이 떠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보화가 심화되는 요즘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현대시의 지나친 난해성이라든지 모호성, 쉽지 않은 등단 절차와 발표 지면의 확보,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의 시의 효용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 문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시를 쓰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을 가로막았던 기존의 장애가 허물어지게 되어 시와 독자와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시인과 독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독자의 시인화, 시인의 독자화가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독자로 생각할 때 전국민의 시인화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시와 노래를 天性的으로 좋아하는 藝와 技의 민족이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논쟁 중에 있는 작품의 질적 가치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터넷 문학 사이트 수가 증가하고 작품 경향이나 유형별로 세분화되어 여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문학사이트간에 경쟁이 촉발되고, 그럴 경우 결국, 사이트는 유형별, 경향별 비슷한 수준의 시인과 시작품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 사이트의 등급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 재편 과정에 기존 오프라인 시인들이 어느 정도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되는 시의 평가가 작품의 조회수에 의해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그 평가 과정에 오프라인 시인들이 참여하면 평가의 공정성과 질적 수준이 보장될 것이다. 사실 〈시인나라〉에서 발간되는 이 사화집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형성 과정을 거쳐 온라인 문학이 정착기에 접어들면 온라인 시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게 될 것이다. 또 이쯤에선 인터넷만의 고유한 시문학이 내용과 형식이 전혀 새로운 예술 장르로 변화 발전하여 자리 매김 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를 통해 표현매체의 변화가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확인하게 되리라.
결론적으로 인터넷 문학의 변화 양상이나 종착지는 지금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의 문학적 停滯性을 극복할 수 있는 21세기 문학의 새로운 희망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