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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東園)에서 국화를 보며 - 백거이(772~846)
어린 날 예전에 가버리고,
꽃 시절 다하였다.
적막한 마음 달랠 길 없어,
다시 이 황량한 뜰에 왔다.
홀로 뜰 가운데 오래 서 있자니,
햇살은 옅고 바람 차다.
가을 남새는 죄다 잡초에 덮이고,
그 좋던 초목도 시들고 꺾였다.
잎 다 진 울타리 사이에
몇 떨기 국화만이 새로 피었다.
잔 들어 술을 조금 따르고
그 곁에 잠시 머물러 본다.
( ... )
그대 국화를 돌아보며 이르노니,
이 늦은 때 어찌 홀로 고운가?
나를 위해 피지 않은 건 알지만
그대 덕분에 잠시 환히 웃어본다.
이 세상 어느 꽃이 나를 위해 피었겠는가. 나를 위해 피지 않았으나, 내가 그 꽃을 바라보고 쓸어보고 코를 갖다 댄다. 이 세상 어느 것도 내 것이 없으나, 지금 누린다. 어느 꽃도, 돌아서면, 다시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삶이 그렇듯이. 그러고 보면, 이 ‘나’ 또한 내 것은 아니다. 가졌다는 것, 안다는 것이 참 부질없다. 이 가을, “그대 때문에 잠시 웃어본다”. 그 한마디가 백낙천이 전하는 한 소식이다. “산등성이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ㅡ”(천상병, ‘들국화’). 오늘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두려움, 우리가 한 번이라도 그 두려움에 떤다면 그때도 강과 바다가, 이 지구가 위험할까?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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