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詩

당신은 스마트한가요/김남규

시인 최주식 2012. 12. 23. 22:59

당신은 스마트한가요

1.
거리의 시위자들 상상력을 점령하고
최후의 독재가 죽음까지 독재해도
세상의 모든 일요일처럼 음 소거된 동영상

2.
갓 태어난 새끼까지 땅속에 밀어 넣고
서둘러 지켜낸 우리의 저녁 식사
검은 피 땅을 녹여가며 그래프를 꺾는다

3.
불의 고리* 뼈 부딪는 소리 바닥을 끌고 가자
시침이 흔들렸고 주소가 흩어졌다
피폭된 증언과 원망들 내진할 수 있을까

4.
영정에 걸어들어가 끝끝내 지키지 못한
그녀의 앵혈 맺힌 자필편지 터치한다
신호가 잡히지 않자 불안한 시선들

 

―김남규(1982~ )

 

* 불의 고리(Ring of Fire):환태평양 지진대를 일컫는 말.

스마트폰이 지구를 점령했다. 우리는 어느 곳보다 빠르게 스마트해져서 날로 스마트한 세상을 질러가고 있다. '상상력을 점령'당해도 '그녀의 앵혈 맺힌 자필 편지'를 터치하듯, 폰을 아예 손에 장착하고 살게 된 것이다. 신호가 안 잡히거나 배터리가 떨어지면 불안증에 빠질밖에 없다. 스마트폰을 떼어내면 금단 증세가 오는 게 청소년만 아니라 손안에 들어온 세상과 쉼 없이 노는 우리 모두가 중독인 것이다. 그러니 '혼자서도 잘 놀아요~'라는 스마트폰족(族)의 신흥제국에서는 얼굴 맞댄 대화보다 기계 속 대화만 밤낮이 없이 분주하다. 갈수록 스마트한 세상, 그 끝이 어디일지 문득문득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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