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으려고
나는 늙으려고 이 세상 끝까지 왔나보다
북두칠성이 물가에 내려와 발을 적시는
호수, 적막하고 고즈넉한 물에 비친 달은
붉게 늙었다 저 괴물 같은 아름다운 달
뒤로 부옇게 흐린 빛은 오로라인가
이 궁벽한 모텔에서 아직 다하지 않은 참회의
말 생각하며 한밤을 깨어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어디론가 사라질
삶,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아주 흐리게 보이는
소리 사이로 눈발 같은 미련 섞여 있어
눈물겹다 세상의 길이란 길
끝에서는, 삭은 두엄 냄새 같은, 편안한
잠 만날 줄 알았건만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저 기막힌 그리움
벗어 놓는단 말인가 부끄러운 나이 잊고
한밤을 여기서 늙어 머리 하얗게 세도록
바라본다 허망한 이승의 목숨 하나가
몸 반쯤 가린 바람 사이로 흔들리는 것을
―조창환(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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