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과수원
한밤의 과수원은 물 오른 젊음이다
서로 나눈 정분이 소(沼) 되어 더욱 깊은
바람도 향기로 오는가 숨다 들킨 입맞춤.
어느새 부푼 열매 잎잎으로 가슴 가려
휘어진 가지결에 주저리를 엮어놓고
한 마리 잠자리도 들여 그 음색을 듣고 있다.
낮이면 잠겨들다 밤이면 떠오르는
거대한 잠수함을 세월 속에 풀어놓고
그 가을 접안을 위해 도색을 하고 있구나.
―장지성(1945~ )
폭염 폭우로 징그럽던 여름도 곧 간다고 한껏 늘어진 몸을 다잡아본다. 여름 과수원도 마지막 힘을 모아 가을을 당겨 힘껏 품을 것이다. 이제는 '물 오른 젊음'도 안으로 수그러들 때, 잠자리에 풀벌레 노래 곁들여 햇볕 듬뿍듬뿍 담아 단맛을 높여가리라. 제아무리 뜨겁던 더위도 처서 무렵의 서늘바람에는 한풀씩 꺾일 테니, 긴 여름에 살아남은 과일들은 한층 달게 저를 익히리라. '거대한 잠수함' 같은 모습으로 '가을 접안'을 도모하는 과수원의 여름 마무리에 바람 걸음도 바쁘겠다. 갈수록 어렵다는 시절, 남은 과일이라도 잘 익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부디 가을이 어서 와서 과일이며 곡식들 두루 잘 살펴 우리네 찌든 나날도 조금씩 더 환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