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고인돌 - 문인수

시인 최주식 2013. 11. 10. 21:34

고인돌 - 문인수(1945~ )

죽음이 참 엄청 무겁겠다.
깜깜하겠다.
초록 이쁜 담쟁이넝쿨이 이 미련한, 시꺼먼 바윗덩이를
사방 묶으며 타넘고 있는데,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그 한복판에 살짝 앉았다.
날아오른다. 아,
죽음의 뚜껑이 열렸다.

너무 높이 들어올린 바람에
풀들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나왔다.
그 어떤 무게가, 암흙이 또 이 사태를 덮겠느냐, 질펀하게
펼쳐지는.
대낮이 번쩍 눈에 부시다.


하루는 내 죽음의 순간 같은 걸 상상하다 멜랑콜리한 기분으로 낮잠을 잤는데 글쎄 가위에 눌리고 만 거예요. 큼지막한 고인돌이 내 얼굴에 얹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대도 꼼짝을 안 하는 고인돌이 내 얼굴 위에 제 궁둥이를 척 올리고는 슬슬 비벼대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 피정을 갔을 때 늙은 신부님은 말씀하셨지요. 다들 앞으로 나와 관 속에 누워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보라고요. 무슨 말이지? 의아해하며 관 속을 내려다보니 그 안에 거울이 놓여 있었고요, 그에 반사되는 내 얼굴은 금방 울 듯한 사내의 슬픔을 닮는가 싶더니만 금세 잿빛으로 뭉개져가는 것이었어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할 것 같으면 솔을 들고 화장실로 가 변기 속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침묵으로 2박3일간의 피정을 마친 뒤 내가 뱉은 첫마디는 아 뜨거워, 였다지요. 햇살이 너무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탓에 절로 입이 트였던 거지요. 가을볕이 좋아 주말이면 단풍 반, 사람 반으로 산이 앓는 몸살, 따지고 보면 다 살자는 짓인데 누가 뭐라 할 수 있나요. 닥치고 쓰레기나 줍자고요. <김민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