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겨울볕 속에도 봄볕은 숨어 있다

시인 최주식 2014. 1. 16. 21:33

겨울볕 속에도 봄볕은 숨어 있다

볕 한 줌에도 幸福해지는 마음… 본성을 위배하면 삶은 괴로워
강이 시련을 받아들이며 성숙해지듯 모든 것은 지나고 새로운 것이 찾아와
아픔을 잊고 새롭게 태어난 삶, 梅花처럼 향기로 추위를 잊을 것

惺全 스님 사진
惺全 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겨울인데도 볕이 따뜻하다. 마치 봄볕인 것만 같다. 겨울볕 속에 숨어있는 봄볕이라 더욱더 반갑다.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으면 꽃이 피어나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지난주만 해도 많이 추워서 겹겹이 옷을 입고도 웅크리고 살았는데 오늘은 이렇게 이 볕 한 줌에도 추위를 잊게 된다.

겨울 속에서 따뜻한 날들은 마치 선물과도 같다. 선물은 받고 기뻐해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나는 산을 내려가 섬진강을 향해 차를 달렸다. 창문을 열고 바람의 결을 느꼈다. 차지 않고 부드러웠다. 나는 하늘의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즐겼다.

볕 한 줌에도 행복해지는 이 마음이란 얼마나 소박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 마음에 너무 많은 것을 쌓아두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란 본시 비우기를 좋아하는데 우린 잊지 못하고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본성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본성을 위배하면 삶은 괴로워지는 법이다. 그때가 지나면 시련도 고통도 미움까지도 다 잊어버려야만 한다. 한 번 잊을 때마다 우리는 성숙해진다. 미움을 잊어야 용서를 만나게 되고, 분노를 잊어야 평화를 만나게 되고, 시련을 잊어야 새로운 탄생을 만나게 된다.

봄볕 같은 겨울볕 아래서 나는 추위를 잊고 겨울을 잊는다. 차를 몰고 달리는 길에 섬진강이 함께 따라온다. 언제나 만나도 반가운 누이 같은 저 섬진강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어머니가 될 것이다. 한 맛의 평등한 바다에서 섬진강은 자신이 달려온 물길의 노고를 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마저도 기꺼이 버리고 바다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강은 흐르면서 비로소 성숙해진다.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새롭게 바다로 태어나는 저 강의 흐름이 아름다운 것은 성숙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세이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섬진강을 달리다 악양 평사리 최 참판 댁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얕은 언덕길을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내려왔다. 예쁘다. 그 재잘거림이 마치 봄볕같이 따뜻하다.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한 채 희희낙락 웃으며 내려가는 그 모습이 내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아마도 봄볕을 형상화한다면 꽃이거나 저런 아이들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경리도 떠나고 최 참판도 떠난 집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재(不在)의 슬픔이 아니라 호기심과 경탄일 것이다. 사진을 찍고 바라봄으로 그들은 과거를 기쁘게 재생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 한 페이지를 넘기듯이 이 순간을 넘길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꽃이 찾아와 봄을 알려주듯이 최 참판이 떠나고 박경리가 떠난 자리에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 찾아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부재를 이긴 또 다른 생명들의 피어남이었다.

나는 최 참판 댁 뒤 공터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볕을 쬐었다. 따뜻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도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 또 살아갈 시간 속에도 반드시 시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볕 속에도 봄볕이 숨어있듯 시련 속에도 어찌 희망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진정 두려운 것은 시련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가면 잊히고, 그리고 그 잊힌 자리에는 새로운 것들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어느 가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팬들의 성원에 인간답게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특이한 답변으로 들렸다.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말에 귀가 끌려 나는 그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그는 얼굴 신경에 염증이 생겨 안면이 마비되고 그것이 청각에 영향을 주어 가수를 은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져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안면 마비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비로소 그의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아픔을 잊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삶의 소중함을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그의 한마디는 며칠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슴을 울리는 말은 진실의 힘이 있다. 그것은 삶을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희망을 보게 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禪僧) 황벽 희운은 이렇게 말했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화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를 지어 가라.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 매화 향기는 매화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련과 향기는 매화의 한 몸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매화는 추위라는 시련 속에서도 향기라는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매화는 향기로 추위를 잊었고 추위를 잊음으로 다시 향기를 만났던 것이다.

벤치에 앉아 나는 겨울볕 속에 숨어있는 봄볕을 만났다. 대숲에 바람이 일자 햇살이 사사삭 떨어져 내렸다.

惺全 | 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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