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 이원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 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
[당선소감]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문 하나를 얻다
문득, 이 ‘문득’이라는 단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 하릴없이 이 ‘문득’이라는 단어를 둘로 쪼개 재미삼아 문(門)과 득(得)이라 뜻을 부여하며 나만의 단어놀이로 얼어붙은 머리를 예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겨울 아침 아직 시린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곧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의 배터리가 따뜻해졌기 때문이겠지만, 괜찮다.
나는 당선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심장에서 뻗어 나온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아 이 손바닥까지 당도하여 내 손바닥이 금방 따뜻해졌다고 믿으면 그만이니까! 그게 삶이니까!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그날 아침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정말 문(門) 하나를 얻었다.(得) 막상 덩그러니 문 앞에 서있으니 낯설고 긴장된다. 그러나 낯설고 긴장된 이 마음으로 다시 시를 쓰기로 다짐해본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문득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문 앞으로 이끌어주신 심사위원 정진규 선생님, 그리고 경상일보사에 감사를 전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사랑 하는 아내 혜원씨, 그리고 소중한 딸 로운이, 아들 루신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다.
-이원복-
-1974년 울산출생
-2008년 울산산업문화축제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심사평] 시적 공간속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 탄력 있게 조정
30명의 예심 통과 작품 114편을 즐겁게 읽었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로 수련의 흔적이 역연했다. 신춘작품을 읽다 보면 대체로 두 개의 폐해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상일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점들이 깨끗하게 극복되고 있는 징후들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그 두 개의 흐름이란 신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교실 지도의 냄새가 나는 작위적 유형의 흐름과 요즈음 젊은 시인들의 편향된 흐름인 관능적 환상의 자폐적인 몸짓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는 자율적인 모색의 투명한 시편들이 상당수 눈에 뜨이고 있음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의식과 표현의 균형과 질서에 대한 점이다. 사유적인 면과 지적 성찰이 너무 앞서 작위와 경직에 머무르거나 헤픈 정서의 노출로불필요한 반복과 난삽을 일삼고 있음이 그것이다.이런 면에서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가 표제가위적인 인상이 있었으나, 앞의 작품들보다 투명하고 탄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금붕어와 항아리와 성대를 다친 소녀들을 하나의 시적 공간 속에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을 탄력 있게 조정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성대를 다치게 한 시간의 상처에 대한 사유와 인식, 그 치유를 향해가는 건강한 포즈도 잃지 않고 있어 믿을 만했다. ‘저녁을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들의 표현에서는 시인이 지녀야 될 비의적(秘儀的) 시력(視力)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축하한다.
-정진규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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