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집
대문 옆에 아이들이 서 있다
조금 떨어져 방한모를 쓴 노인이 서 있다
노인 옆엔 지게가 비스듬히 서 있다
그 밑에 누렁이와 장화가 서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다
일제히 마늘밭을 쳐다보고 있다
반짝반짝 살비듬이 떨어지고 있다
남향집을 비추는 빛은 서 있는
아이들의 입속과 노인과 개의 입속,
검은 장화 속에서도 환히
빛나고 있다
-고영민(1968~)
- /김성규
하나의 풍경이 화자의 사사롭지 않고,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읽으니 한적하고 평화롭다. 무르고 약한 것을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는 것이 시심(詩心)이라면 그것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꽃밭에 있는 높고 낮은 화초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빗줄기가 골고루 뿌리듯이 볕은 내려 남향집의 모든 존재를 동시에 밝게 비춘다.
- 문태준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