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당신
당신, 날 보고 웃네요
찻잔 둘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오래전에 그랬듯이
당신, 여전히 날 보고 웃네요
어느새 창밖에는 눈발 가득하고요
나는 아직 못한 말이 있는데
아니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두고 온 말들은 머릿속을 맴돌고
나는 이렇게 아픈데
여전히 아무 말 못했는데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당신,
내 앞에 웃고만 있네요
-곽효환(1967~ )
- /유재일
화자는 아프고 위태로운 형편이지만 화자 또한 말을 꺼내놓고 있지는 않다. 속마음만 쏟아지는 눈발처럼 수선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뿐.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사랑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별하거나 해후(邂逅)하는 사랑은 얼마나 할 말들이 많겠는가. 부려놓으면 산처럼 쌓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당신은 잔잔한 미소로써 안부 묻는 일을 대신하고, 그윽한 미소로써 애틋함을 끌어안아 어루만진다. 큰 사랑은 이처럼 주고받는 말을 버리고도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문태준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