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 장은 의형제를 맺었던 구상 시인의 구도자적인 품성이 지금도 그립다고 했다. [최효정 기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중략)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 본다
-구상(1919~2004) ‘꽃자리’ 중에서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 비리 등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잘사는데 왜 이러한 역설이 확산되고 있을까’ 생각할 때 떠오르는 시가 바로 구상 시인의 ‘꽃자리’이다.
나는 그분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어느 해인가. “김군, 너를 내 마지막 동생으로 삼는다” 하셨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그 뒤로 사적 자리에서 형님으로 모시며 그분의 인품을 닮으려 애썼다. ‘꽃자리’에서 보이듯 시인은 탐욕과 집착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방하착(放下着), 즉 생각을 내려놓고 사신 분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수많은 이의 대부(代父) 소임을 다하셨지만 불교적 삶을 사시며 어느 종교를 지녔건 모든 일이 제 맘먹기에 달려 있음을 ‘꽃자리’란 상징어로 알려주셨다.
선생과의 긴 인연을 돌아보니 구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아이처럼 곱던 그분 미소가 떠오른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바로 이 자리가 나에게는 ‘꽃자리’이니 최선을 다하고 갈까 한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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