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그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 자크 프레베르(1900~77)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중에서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다시 봤을 때는 예술 이야기가 아닐까 했다. 또 보니 인생 이야기인 것 같았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시가 되었다.
시는 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문이 열려 있는 새장을 그려서 숲에 걸어두라는 지시로 시작된다. 사랑이나 예술을 이루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다음에는 오랜 기다림과 초조함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 따위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충고를 한다. 누구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초상화의 완성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 인용된 이 시의 중간 부분이다. 새를 잡으려고 걸어놓았던 새장을 지우는 일, 즉 자신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헌신을 모두 무위로 돌리는 일이야말로 온전한 아름다운 새의 그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놀림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의도만 남고 정작 새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할 뻔했던 나의 많은 오류를 잡아주었다. 자유롭지만 그만큼 힘든 게 예술의 길이라는 걸 자각하게 만들어줘서 읽을 때마다 감사하다. 서둘러 한 서명(署名)은 없는지 늘 반성하게 해주는, 내겐 나침반 같은 시다.
김창완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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