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낭송/낭송하기 좋은 시

자살/류시화 외 5편

시인 최주식 2018. 6. 29. 21:58

서혜진 / 너에게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에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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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발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은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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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 류시화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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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김민소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너로 인해
내 눈빛은 살아 있고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너로 인해 내 귀는 깨어있다


함께하지 않아도
느끼는 너로 인해
내 가슴은 타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들어와 버린 너로 인해
내 삶은 선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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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강렬했으나 / 이정하


강한 것이, 열정적인 것이 좋은 걸로 알았다 특히 사랑에는
광화문 네거리에 걸려있는 전광판처럼 화려하고 거창해야
나는 내 사랑이 너에게 당도할 줄 알았다
나의 그러한 강렬함에 너는 내 손을 잡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너는 너무도 쉽게 피해갔던 것이다
하기사 한 순간 짧게 퍼붓는 소낙비야 잠시만 몸을 피하면 그 뿐 아닌가
대신 나는 네가 뿌려놓은 가랑비에 몸이 흠뻑 젖었다
너의 은은한 눈빛에, 너의 조용한 고개 끄덕임에, 너의 단아한 미소에
내 몸과 영혼까지 다 젖고 말았다


너는 나를 피해갔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너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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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 원태연


정말 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 너로 보였어


커피잔도 가로수도 하늘도 바람도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도

다 너처럼 보였어


그래서 순간순간 마음이 뛰고
가슴이 울리고 그랬어


가슴이 울릴 때마다 너를 진짜로 만나서

'보고싶었어'라고
얘기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