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시간이여, 매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 감아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느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2.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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