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소리 / 신경림

시인 최주식 2009. 2. 4. 21:48

소리
-떠도는 이의 노래 

너는 나를 칼날 위에 서게 한다
너는 나를 불 앞에 서게 한다
너는 나를 물 속에 뛰어들게 한다

한밤에 길을 떠나게 한다
외로운 고장 썰렁한 장바닥에서
진종일 떨며 서성거리게 한다
귀먹은 땜장이 길동무삼아
산마을 갯마을을 떠돌게 한다

지는 해 등에 업고 긴 그림자로
꿈 속에서 고향을 찾게 한다
엿도가에서 옹기전에서 달비전에서
부사귀 몽달귀 동무되어 뛰게 한다
새벽에 눈뜨고 강물소리를 듣게 한다

너는 나를 불을 두려워하게 한다
물 속에 뛰어들기를 물리치게 한다
그래서 한밤에 다시 돌아오게 한다
골방에 깊이 숨어서 떨게 한다

그러나 너는 나를 되떠나게 한다
비클대고 절뚝거리는 이들 데불고
버려진 포구에서 썩어가는 갯벌에서
마파람 하늬바람에 취하게 한다
너는 다시 나를 칼날 위에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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