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헤매는 발들을 위한 노래

시인 최주식 2009. 2. 5. 22:23

헤매는 발들을 위한 노래

 

강은교


  지나간다

  집들이.

  꽁꽁 언 아이들이.

  생각에 잠겨

  겨울 바람이.


  어릴 때 나는 흐르는 물가에 살았다. 아침이면 웃으며 물이 나를 씻었고 밤이면 지는 해가 내 발을 따스히 덮어 주었다. 나는 걷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웃음. 그러면 내 발이 나를 똑바로 세워 주었다.


  지나간다

  자전거 한 대가.

  자전거에 실려

  목없는 닭들이.

  눈물마른 눈물

  숨죽인 숨들이.


조금 컸을 때 나는 내 집을 떠났다. 아무것도 나를 씻어 주지 않아서 점점 나는 더러워졌다.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누가 내 발에 끊임없이 채찍질해서, 나는 달렸다.


  지나간다

  길들이.

  헤매는 눈먼 창들이.

  허리 꺾인 꽃들이.

  넘어지며 처녀들이.


어느날 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했다. 내 발은 쉴 곳이 없었다. 걷고 걸어도, 뛰고 뛰어도 아침에 지은 집은 황혼이면 무너졌다. 아직 멀었습니까! 나는 외쳤다.


  지나간다

  서 있는 울음소리와

  앉아 있는 울음소리와

  이제 그만 누운 울음소리와.


  오르기 위하여

  오르기 위하여


빈자일기, 민음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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