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인연설화조(因緣說話調) / 서정주

시인 최주식 2010. 1. 10. 21:53

인연설화조(因緣說話調)

                                서정주

  언제던가 나는 한 송이의 모란꽃으로 피어 있었다.

  한 예쁜 처녀가 옆에서 나와 마주 보고 살았다.

  그 뒤 어느 날

  모란 꽃잎은 떨어져 누워

  메말라서 가 되었다가

  곧 하고 한 세상이 되었다.

  그게 이내 처녀도 죽어서

  그 언저리의 속에 묻혔다.


  그것이 또 억수의가 와서

  모란꽃이 사위어 된 흙 위에 들을

  강물로 쓸고 내려가던 때,

  땅 속에 괴어 있던 처녀의 도 따라서

  으로 흘렀다.


  그래, 그 모란꽃 사윈 재가 강물에서

  어느 물고기의 배로 들어가

  그 혈육(血肉)에 자리했을 때,

  처녀의 피가 흘러가서 된 물살

  그 고기 가까이서 출렁이게 되고,

  그 고기를 - 그 좋아서 뛰던 고기를

  어느 하늘가의 물새가 와 채어 먹은 뒤엔

  처녀도 이내 햇볕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라서

  그 새의 날개 곁을 스쳐 다니는 구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새는 그 뒤 또 어느 날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아서,

  구름이 아무리 하늘에 머물게 할래야

  머물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에

  어쩔 수없이 구름은 또 소나기 마음을 내 소나기로 쏟아져서

  그 죽은 새를 사 간 집 에 퍼부었다. 


  그랬더니, 그 집 두 양주가 그 새고길 저녁상에서 먹어 소화하고,

  이어 한 영아(嬰兒)를 낳아 양육하고 있기에,

  뜰에 내린 소나기

  거기 묻힌 모란 씨를 불리어 움트게 하고

  그 꽃대를 타고 또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이 마당에

  현생(現生)의 모란꽃이 제일 좋게 핀 날,

  처녀와 모란꽃은 또 한 번 마주보고 있다만,

  허나 벌써 처녀는 모란꽃 속에 있고

  전날의 모란꽃이 내가 되어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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