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물빛 1 / 마종기

시인 최주식 2010. 1. 14. 21:33

물빛 1 /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 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
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
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
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
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
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
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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