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남편 / 문정희

시인 최주식 2010. 1. 16. 21:13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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