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 복효근 (시인)
이 다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랜 육탈 후에 나는 어머니의 손가락뼈 하나를 가지고 싶었다. 퇴행성관절염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헝클어져 굳어버린 어머니의 손가락......
어릴 적 등이 가렵다고 하면 어머니는 내 등에 손을 넣어 쓰다듬어주었다. 긁지 않고 쓰다듬어주었다. 손바닥은 짚으로 짠 가마니처럼 꺼끌꺼끌하다. 겨울이면 손끝이 갈라져 갈라진 틈에 들기름을 바르고 호롱불에 지졌던 기억이 선연하다. 민간요법으로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는 모르나 그렇게 손끝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린 모양이다. 어머니의 손톱은 밭일에 논일에 부엌일에 빨래에 들일에 산일에 우리 일에 남의 일에 흙일에 물일에 닳아서 깎지 않아도 끝이 몽그라져 있다. 그 손톱은 곰발톱처럼 부풀어 굳어있어서 어쩌다가 손톱을 한번 다듬을라치면 손톱깎이의 작은 아귀에 손톱 끝이 들어가지 않아 할머니가 쓰시던 무쇠가위로 다듬었다.
가지가지 우환 속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농가에서 여덟을 낳아 여섯을 기른 손이다. 그 손에 관절염이 박혀서 손가락 마디가 비툴삐뚤 어긋나고 부어올라 좀처럼 아프단 말을 안하던 당신도 그제서야 아프단다. 자식들 몰래 보건소에 다녔단다. 자식들 걱정할까봐......뒤늦게 자식들이 한약 몇 제 해드렸다. 관절염전문이라는 남양당 약을 몇 제 드시고 나았단다. 다 나았다는 그 손이 아직도 부어있는데도 하나도 안 아프단다. 다 나았단다. 아직도 그 손으로 텃밭을 가꾸고 식혜를 고고 추어탕을 끓이고 김치를 담가놓고 주말이면 자식을 부르신다.
언젠가 나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산에 나무를 간 적이 있었다. 너덜너덜한 목장갑을 낀어머니 손엔 낫이 들려져 있었는데 삭정이를 거두어 안으며 그 때 당신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나는 이 낫으로 아직꺼정 어린 나무는 한번도 찍어보들 않았다. 다 어린 느그들 생각헤서여." 어쩌면 그 말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한번은 동네 애들끼리 남원 시내 구경 갔던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당재 너머 팍팍한 20리 길을 걸어오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수박밭에 가서 애어린 수박을 딴 적이 있었다. 그것이 동네에 알려진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처음으로 회초리가 들려있었다. 그 회초리를 든 손이 나를 선생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갈수록 어머니는 주름 투성이가 된다. 번데기가 되어가나 보다. 커만 보이던 어머니는 내 큰딸보다 작다. 언제 더 작아져 고치집 속으로 들어가 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어머니는 정말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아이들 학교 숙제라고 둘러댔다. 어머니 그 손을 10분간만 빌리자고 했다. 곰 발바닥 같은 그 손에 오일을 바르고 석회를 반죽하여 거푸집을 떴다. 그 본에 다시 석회를 반죽하여 부어넣고 굳은 다음 거푸집을 깨냈다. 서투른 솜씨에 손가락 부분이 잘려지긴 했으나 비툴삐뚤 손가락 마디가 그대로 찍힌 주름 투성이 어머니의 손모양이 완성되었다. 부러진 부분은 접착제로 붙일 것이다. 어머니는 벌짓을 다한다고 궁시렁대신다.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나는 관절염으로 뒤틀어진 어머니의 손을 가장 아름다운 손으로 기억할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는 먼 길이 남아있다. 당신이 내 곁에 없을 먼 훗날 나의 길이 힘들 때, 죄짓고 싶을 때 나는 이 손을 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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