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時調)창작법

[문성해]-외곽의 힘

시인 최주식 2010. 1. 24. 21:50
[문성해]-외곽의 힘
 
도시의 외곽에는 짐승들이 산다
동쪽에는 개들이
서쪽에는 오리와 타조들이
사료더미를 지고 오는
구레나룻 사내들보다 건장하게 자란다
 
신도시라 이름하는 이 도시에는
걸리적거린다 하여
전봇대들도 다 땅 속에 숨겨져 있다
공원과 분수가 넘쳐나는 거리
애완견을 모시고 나온
앵무새 같은 여자들이 산책을 한다
늘 중심에 있는 이곳 사람들은
외곽을 까맣게 잊고 산 지 오래
 
보신은 중심엔 없는 걸까
가끔씩 보신을 위해
까만 승용차를 타고 사람들이 외곽을 찾는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비명소리 들리는 외곽에서
서둘러 보신을 마치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간다
 
썩은 개울가에 몰래 털이 버려지고
커다란 도마가 서둘러 씻겨지는 외곽에서
짐승들은 쉬지 않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무법지와도 같은 그곳
아직 비포장인 도로를 한참 들어가면
음식찌꺼기 냄새와 분뇨내가 코를 찌르는 곳
 
구레나룻의 사내 손목에서
끝끝내 내젓던 모가지의 불거진 힘줄,
중심에서 밀려나고 밀려나도
끝내는 더 넓은 외곽으로 세를 넓히는
외곽의 힘은 바로 저런 것이 아니었을까
 
외곽은 언제나 중심을 먹여살린다

-문성해의 시 <외곽의 힘>2003년 여름 (시인세계)
 
-------------------------------------------------
 경제개발의 힘에 의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1970년대에 두드러진 이슈였다. 그것은 바로 도시의 중심을 확보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 중심에 진입코자 했던 사람들이 외곽을 형성한 이야기다. 도시 빈민이란 원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외곽에 있었던 것이다. 도시 외곽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다시 중심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외곽은 생업의 모든 것은 도시의 중심을 위한 업종으로 변화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밀려난 외곽이 중심도시에 생계를 잇고 있다는 사링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현 도시의 제문제를 다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은 이러한 외곽에 포진한 채 생계를 잇고 있는 '구레나룻의 사내'와 보신을 위해 사육되는 '짐승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시인은 그 외곽에 대해 '중심에서 밀려나도 밀려나도/ 끝내는 더 넓은 외곽으로 세를 넓히는/외곽의 힘'을 말하고 있다. 역설과 사실이 혼재하고 있는 이 시의 힘은 '외곽'은 또다른 '중심'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은 사실 때문이며, '짐승'의 이야기는 곧 '사람'의 이야기와 환치된다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게 없다.
 
 외곽이 중심을 '보신' 시킨다라는 논리는 시인만이 뒤집어 볼 수 있는 상상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시인은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이상의 묵시적이고 예언적 힘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심'이라고 표현된 도시는 실제는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외곽'으로 표현된 '짐승들이 쉬지 않고 새끼를 낳는 곳'은 오히려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 자본은 중심에서 점차 외곽으로 그 세를 넓히는 과정을 밟고 있으며,(때로는 국경과 국적을 초월하는 단계에 이미 접어 들었다) 권력은 언제든지 민중들을 도시 중심으로 몰아넣고 포위할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층민들이 상주하는 곳은 외곽이 아니라 중심이 되고 이를 통제하는 권력은 중심보다 외곽에서 중심을 포위하는 형세를 취하게 된다는 뜻이다. (5.18이나 LA 폭동에서 보여주는 군대와  경찰의 전략을 이해하면 쉽다)문성해의 <외곽의 힘>을 보면서 이 시는 분명 중심을 보여주기 보다 외곽만을 보여 주는 시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외곽과 중심에 대한 첨예하고 깊은 시인의 의식이 필요하다는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