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인의 요절과 마지막 시 2 | |||||||||
진이정 /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 차창룡 시인
아트만이라! 진이정 형의 첫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인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1994)에 실린 시 중에서 「아트만의 나날들」은 특히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발랄하면서도 깊은 시이다. 브라만은 우주의 근본 원리이다. 그것은 절대이며 전체이기 때문에 어떠한 말이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 브라만을 말로 혹은 형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쉬누와 파괴의 신 쉬바를 만든 것이니, 브라흐마와 비쉬누와 쉬바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존재이다. 브라만은 달리 말해 신성神性이라 할 수 있다. 신성은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속에 들어 있다. 이렇게 각 개체 속에 현존하는 신성(브라만)을 아트만(참자아)이라 한다. 따라서 브라만과 아트만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진이정은 이러한 브라만과 아트만의 관계를 참으로 재미있고 서글프게,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체험 속에서 시화하고 있다. 코끝에선 약 냄새가 났고, 미친 듯이 돈을 뿌리는 백인 병사의 곁을 지나 적산가옥 앞길을 지나 포대기에 업힌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다 외삼촌의 술주정이 약냄새에 섞여 날 어지럽게 한다 박카스를 한 병 마시곤 다시 잠든 외삼촌 그는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의 아트만은 사라지고 없다 한다 그러니 거룩한 브라만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가 그리워하는 건 박카스에 취한, 구체적인, 생생한 그의 아트만이다 - '아트만의 나날들' 에서 약 냄새란 미군 병사의 마약 냄새인 듯하다. 외삼촌의 술주정과 미군 병사의 약 냄새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도의 함피에서 숙소 주인이 내게 은밀히 물었다. “뭔가 특별한 것을 원하십니까?” ‘특별한 것’이란 분명 마약이었다. 나는 거절했지만, 몇몇 외국인은 그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화자의 외삼촌이 곧 숙소 주인과 비슷한 사람일까? 물가가 비교적 싼 외국에 가서 마약을 하는 이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미군 병사의 심정과 어떻게 다를까? 이 시의 첫 구절이 “약 냄새, / 돈은 슬퍼라”인 것으로 보아, 진이정에게 ‘약 냄새’와 ‘돈’은 동의어이다. 마약의 대가로 받은 돈도 슬프고, 제정신을 잃고 돈을 뿌리면서 뿜어내는 약 냄새도 슬프다. 그런 풍경은 자본주의를 향해 달려가는 나라들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외삼촌은 ‘박카스’를 한 병 마시고 죽었다. 여기서 박카스는 아무래도 독약이나 수면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약 냄새’의 약은 독약이나 수면제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워하는 건/박카스에 취한, 구체적인, 생생한 그의 아트만이다”라는 구절 속의 박카스는 무엇인가? 그것은 독약이라기보다 외삼촌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이겠지만, 그런 구별이 특별히 의미있는 것은 아니겠다. 중요한 것은 화자가 외삼촌의 ‘생생한 아트만’을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외삼촌의 ‘아트만’은 죽음을 통해 “저 머나먼 브라만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아트만은 ‘생명’과 동의어가 된다. 그 생명은 “일용할 봉지쌀과 함께 퇴근하던 외삼촌의 구체성”이다. 그 구체성이 브라만 속으로 사라졌다니, 그렇다면 브라만은 죽음이란 말인가? 모든 생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이란 생명 있는 것의 궁극적인 원리이다. 그렇다면 브라만이 ‘죽음’인 것이 맞다. 진이정의 시 속에서 브라만과 아트만이 삶과 죽음으로 교묘하게 나누어지고 있음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아니, 서글픈 일이다. 왜냐하면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것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부조리한 현실이 있어 그러한 진리도 무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인은 ‘슬픔’의 의미를 깨닫는다. 봉지쌀의 아트만이 사라졌듯이, 내 유년시절의 아트만들도 이젠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기분을 슬프다고 하는 것일까 이 범아일여의 천지에서 아니 슬픈 것이 무엇이던가 오십환짜리 백동전처럼 남루한 슬픔이지만, 슬픔의 화폐개혁은 아직도 기약 없어라 슬픔의 지폐에서 길어올린 육십년대 꼬마의 쾌락들, 땡이와 연필 함대, 크라운 산도, 코롬방 아이스케키… 고 코묻은 아트만들,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다,라는 말씀조차 내겐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브라만을 믿지 않듯, 지금 나는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 '아트만의 나날들'에서 진이정의 역설은 여기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진리가 무력해진 상황이 슬픈 것이 아니라, 세상이 범아일여이기 때문에 세상 모든 현상이 슬프다는 것이 진이정의 역설이다.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이기 때문에 세상에는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범아일여’의 사상에 따르면, 우주의 근본 원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서글픈 우주의 근본 원리가 다름 아닌 참자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상을 수놓는 온갖 아트만이 슬픔의 화폐(자본주의 시대의 아트만은 결국 화폐이리라)인 이상, 아트만과 브라만이 하나라는 말씀이 어떻게 위안이 되겠는가. 이러한 인식의 토대 아래 화자는 “죽으면, 그렇다…/그냥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사법계事法界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전자야말로 범아일여라는 법칙을 뒤집고 뒤집어서 도달한 결론으로, 진이정의 “죽으면, 그렇다…/그냥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과 연결된다. 진이정의 사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트만이 무너진 마당에 인생이 꿈이란 건, 그 얼마나 뻔한 비유인가 이제부터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하지만 못내 구체적인, 빵구 나오시 가게의 흙바닥에 굴러다니던 호이루와 몽키스패너들의 그 완강함이다 나, 아트만 없이 숨쉬고 있다 브라만에 구걸하지 않으리라 난 이제야 그 옛날의 십원짜리 지폐를 꺼내든다 그 슬픈 돈을 내고 구체적인 박카스 한 병 사먹으리라 슬픔의 드링크에 취해, 내내 위안받으리라 나라는 물건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각성이 둔한 내 뒷골을 쑤셔야만 하리라 하하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니, 그럼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단 말인가! -'아트만의 나날들' 끝부분 참자아가 없어진 마당에, 참자아의 집인 인생이 꿈이라는 것은 확실히 헛된 비유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의지할 경전(우파니샤드)은 이제 현실뿐이다. ‘빵구 나오시’ 가게의 몽키스패너 같은 구체적인 물건만이 경전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아닌 깨달음이 왜 가슴 아픈 것일까? 왜냐하면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종교적·철학적인 신념도 물리적인 폭력과 물질적인 결핍 아래서는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트만 없이 숨쉬고 있는 화자는 브라만에 구걸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구체적인 박카스’를 사먹기 위해 “이제야 그 옛날의 십원짜리 지폐를 꺼내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브라만을 믿고, 범아일여를 믿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 진이정의 사유가 훌륭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진이정이 범아일여를 믿었기 때문이다. 범아일여를 믿고 공부한 결과, 범아일여라는 사상이 세상을 결코 구원하지 않을 것이며, 한낱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범아일여를 믿지 않았거나, 끝까지 범아일여를 절대 진리로 생각했다면, 이런 시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진이정이 범아일여를 부정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일차원적인 반응이다. 진이정의 부정은 결코 절대적인 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는 구체적인 현실로 돌아와, ‘슬픔의 드링크’에 취해 위안받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는 “나라는 물건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각성이/둔한 내 뒷골을 쑤셔야만 하리라”라고 말한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아트만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아트만이란 참자아이므로, 참자아가 무너졌다면 나는 이제 없는 것이란 생각 때문일까? 그런데 화자는 자신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각성’을 강조한다. 내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각성은 나가르주나의 중관中觀사상에 따른 것이리라. 결국 범아일여를 부정하는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이정의 사유가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몸으로 느끼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진이정은 그 각성이 뒷골을 쑤셔야 한다고 말한다. 깨달음은 쉽지만 깨달음의 체화는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인의 사유는 실천하기 힘든 형이상학적 사유를 넘어서는 구체성을 띤다. 나가르주나는 『중론中論』에서 “결정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항상됨에 집착하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단멸斷滅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있다는 것에도 없다는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觀有無品」)라고 말했다. 따라서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모두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데, 시인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생각에 더 집착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있었다’나 ‘있다’는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는 그 생각을 토대로 바로 시적인 기지를 발휘한다. “그럼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단 말인가!” 여기서 형이상학적인 성찰보다는 시적인 사유를 펼치는 진이정은 중관사상 속에서 중관사상의 진리로부터 가볍게 빠져나온다. 삶과 죽음이란 따로 없다는, 따로 없으므로 삶에도 죽음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나가르주나의 설법은 지극히 옳지만, 그것이 옳다 해도 실존하는 인간의 괴로움 또한 엄존하는 것이다. 엄존하는 괴로움을 여읠 수 있는 방법을 나가르주나는 가르치고 있지만, 그 방법 또한 사실 브라만이고 아트만이고, 범아일여일 뿐이다. 칼과 배고픔이 먼저 우리의 ‘없는 감각’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감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죽음’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우리의 존재가 원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면, 죽어도 아픔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이니, 아픔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면, 따라서 죽음도 죽음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슬픔의 드링크’를 통해서만 위안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시의 결론 아닌 결론이다. 결론 아닌 결론이라 한 것은 이 시가 진정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 결론 아닌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이정의 이런 시적 사유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대중적 전위주의’를 주장하면서 대중문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던 시인에게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주장하면서 진이정은 ‘대중’에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시론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시인들이 대중들의 구미를 따라가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의 관심은 대중들의 가벼운 흥미가 아닌, 역사와 우주의 진리를 현실 속에서 설파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결코 무겁지 않게 가볍게 설파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문화론은 한 마디로 ‘대중적 전위주의’였다. 1989년 유하·박인택·함민복 형과 함께 동인을 결성한 우리는 거의 매주 만나서 새로 써온 시를 읽고 합평회를 열었다. 새로 나온 시집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진이정 형의 원고는 참 경이로웠다. 주로 원고지 뒷면을 사용했던 것 같다. 빽빽하게 적어내려간 긴 시가 원고지 한 장에 다 들어갔다. 가령 「진창」 같은 시가 원고지 뒷면에 쏙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라. 한자 한자 또박또박 적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 깔끔한 필치 속에는 촌철살인의 풍자가 들어 있고, 한없는 슬픔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 슬픔을 알아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형의 시 속에 「아트만의 나날들」 같은 복잡한 사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유는 현실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착각을 안긴다. 형의 아픔도 그랬다. 군대에서 제대해 돌아온 후 형은 동인 모임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전화하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 “형, 몸이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아니, 괜찮아. 감기에 걸려서 어제 약국에서 약 사다 먹었어.”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는 늘 가볍게 얘기하는 버릇 때문에 우리는 까마득하게 속았고, 형은 짧고도 긴 투병생활을 일찍 마치게 된 것이었다. 형은 언제나 그랬다. “시집 준비 잘하고 있니?” “네 시가 많이 좋아졌더라.” 동인들의 시세계를 열심히 점검했지만, 정작 자신의 것은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동인들이 대부분 시집을 출간했는데도 형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시집을 내지 못했다. 형과 이별한 지 10년, 이제 추억은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다. 추억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족해, 나는 이번에도 형과의 추억을 얘기하지 못했다. 나의 바람은 형과 마주 앉아 「아트만의 나날들」이라는 시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을 나는 여기에 적었다. 형이 어떤 대답을 해올는지? 이제 형의 시를 다시 읽어야 할 때다. 객관적으로 형의 시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 믿는다. 허수경 선배는 독일에서도 진이정 형의 시를 읽고 있었다. “빛이 좋은 날을 골라 쓸모 없다 싶은 책들을 골라내어 버린다. 짐이다, 싶은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오래된 여행기도 있고 철학책도 있고 유행일 때 사놓은 심리학책도 있다. 책을 다 버리더라도, 혼자 생각한다. 버릴 수 없는 책이 있을까? 그 가운데 하나, 가난한 벗의 시집 하나, 이런 시가 들어 있는 시집 하나.”(허수경,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문학동네, 107쪽) 인생 혹은 거품의 눈물, 그 생애에 걸친 소금기 눈물은 왜 바다처럼 찝찔해야만 할까 폭풍우, 폭풍우도 없이! - '눈물의 일생' 전문 차창룡 1966년 전남 곡성 출생. 1989년 《문학과사회》에 시 발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문학과지성사, 199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민음사, 1997), 『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2002) 등. 총론 / 요절한 시인들이 보여준 죽음의 방식과 그 의미 - 정효구 / 문학평론가 1. 글을 열며 김소월, 이상, 윤동주, 박용철, 이장희, 임홍재, 신동엽, 김수영, 고정희, 기형도, 박정만, 이연주, 진이정……. 우리 시단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방금 열거한 시인들의 성명을 보고 필자인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금방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굳이 말을 꺼내자면, 위에서 열거한 시인들은 하나같이 길지 않은 생애를 보내고 잽싼 걸음으로 이승을 하직한 시인들이다. 이런 시인들을 가리켜 우리는 ‘요절시인’이라고 칭하거니와, 그런 시인들의 시와 삶 앞에서 우리는 각별한 감정과 끝나지 않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요절한 시인이든, 장수한 시인이든, 평균 수명 정도를 표나지 않게 살다 간 시인이든, 이런 모든 시인들을 포함한 인간들 하나하나의 죽음은 그 모양도 백인백색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또한 백인백색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죽음에 대한 연구가 인간사를 깊이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의 연구를 지속하다 보면, 사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 죽는 일이며,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긴박한 문제는 삶의 그림자 혹은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저 죽음이란 존재와 어떻게 투쟁하고, 대면하고, 대화하고, 타협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 세상을 일찍 떠남으로써 숱한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감정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5명의 시인 ― 고정희, 기형도, 김남주, 박정만, 진이정 ― 과 관련하여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관념적인 죽음이 아닌, 실존적인 육체의 죽음 앞에서 나는 말을 장황하게 풀어놓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며, 일찍 찾아온 그들의 죽음이란 그림자 앞에서 그것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맞대결할 용기가 쉽게 솟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잘 달래며, 그리고 인간과 역사와 시인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내 마음 속에서 회복시키며, 그들의 그림자를 고요히 끌어안고 발효시키다 보면 승화의 숨은 신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글을 힘있게 밀어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 역사와의 대결에서 실족한 비극 ― 고정희 고정희는 역사를 믿는 시인이다. 고정희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시인이다. 고정희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하며 현실 속에 뛰어든 시인이다. 고정희는 그가 믿는 기독교까지도 이러한 역사관과 더불어 함께 하는 신앙이 아니라면 그 의미가 없다고 믿는 ‘역사주의자’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엔 항상 미래를 향한 희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엔 역사를 살리고 인간을 살려내려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시엔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역사 속의 인간들을 계몽시키고자 하는 교훈적 선동성도 가득하다. 더 나아가 그의 시엔 왜곡된 역사, 파행적인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정의감이 가득하다. 이런 고정희의 내면세계와 행동 그리고 그의 시를 통하여 분출되는 강한 의지력을 읽고 있노라면, 역사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현장 속의 진행형 동사임을 절감하게 된다. 고정희, 그는 평생을 젊게 산 시인이다. 그가 쓴 시의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그리고 그가 살아온 생애의 어느 시간을 보더라도 그는 청년처럼 싱싱하고 건강하였다. 그는 진행형 동사의 형태를 띤 역사의 중심부 혹은 최전선에 자신의 위치를 정하였고, 그 위치를 이탈하지 않으면서 정의의 역사를 만들어내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그가 이처럼 진행형의 형태를 띤 역사의 중심부 혹은 최전선에 자신을 의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세우면서 내공을 키우듯 스스로의 안팎을 무장하려고 노력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매년 계속된 ‘지리산 등반’이었다. 그러나 그가 매년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행한 지리산 등반은 그로 하여금 갑자기 불어난 홍수 속에서 실족을 하게 만듦으로써 그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가 믿는 기독교 야훼 하나님에게 항의라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식처럼 치러진 그의 지리산 등반과 그에 포함된 적극적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리산 등반도중 생명을 잃은 그의 비극은 수많은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그의 지리산 등반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리산은 어떤 산인가. “아! 지리산!” 하고 외칠 때, 우리는 그 외침으로부터 남다른 느낌과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 까닭은 지리산이 인간과 관련된 무수한 삶과 역사의 내용들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면 고정희가 지리산을 오른 것은 물리적인 산으로서의 지리산을 오른 것이 아니다. 그는 역사의 한가운데를 오른 것이고, 그럼으로써 역사의 기운을 몸속 깊은 곳까지 흡수하고자 한 것이며, 그 힘으로 역사의 미래를 희망의 세계로 바꾸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를 실족사시킨 지리산 계곡의 홍수처럼, 역사는 선한 의도까지도 무력화시키고 배제시킬 만큼 폭력적일 때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그 역사와 맞서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역사의 횡포까지도 감내할 만한 용기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든 것이 역사라고 불리움에도 불구하고, 역사란 어찌 그렇게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그 엄청난 문제 앞에서 역사와 대면한 고정희는 안타깝게도 실족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여기서 그의 실족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는 분명 외형적으로 볼 때, 실족을 통하여 역사 바깥으로 주검이 되어 밀려난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 그는 그 실족에 의하여 역사의 물결에 온몸을 던지면서 역사의 온전한 회복과 발전을 꿈꾼 것이라고……. 그렇게 볼 때, 고정희의 실족사는 한편으로 비극의 형태를 띠지만, 다른 한편으론 영웅의 승리와 같은 성공담의 모습을 지니는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 시단은 한동안 허전하였다. 여성시단은 물론 민중시단, 더 나아가 기독교시단까지 허전함을 메우기 어려웠다. 그런 만큼 그의 역할은 컸었던 것이고, 그런 만큼 그의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수많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3.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질식한 생 ― 기형도 기형도의 시집처럼 어두운 시집이 또 있을까. 세상의 어둠이란 어둠은 다 이 시집에 모여들었듯이 그의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캄캄하였다. 따라서 그의 시집을 열어보는 일은 어둠과 대면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시 한 편 한 편을 읽는 일은 어둠을 만나고 판독하는 일과 같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어둠의 세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을까. 아니 무슨 일로 인하여 세상의 어둠이 그의 영혼 속으로 그토록 오랫동안 강렬하게 몰려들어갔을까. 시대적·사회적 분석도 필요하겠지만, 특별히 생애사적 탐구와 심리학적 탐구를 필요로 하는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 어둠에 목이 콱콱 막히는 체험을 반복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그의 시집 속에 자욱한 안개처럼 스며 있는 그 어둠의 유혹과 마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겐 어둠의 세계에 잠기고 싶어하는, 아니 어둠의 세계를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고 싶은, 아니 어둠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기형도 시에 그토록 강하게 이끌리는 비밀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쯤해서 인간이 가진 죽음의 본능을 떠올린다.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 속에 있으면서 상호 모순관계를 유지하거나 상호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무엇인가가 한 편에 유리한 계기를 이루게 되면, 이들 두 본능 중 하나의 본능이 월등하게 우세해지며 다른 하나를 억압한다. 기형도의 경우 죽음의 본능이 큰 세력을 형성하면서 삶의 본능을 억압한 형국이거니와, 그 거대해진 죽음의 본능에 저당잡힌 한 인간이 마침내 자기자신을 죽음 그 자체로 만들어버린 경우가 기형도의 예이다. 삶의 본능도 강력하고 교활하다. 그러나 죽음의 본능도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하고 교활하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결백한 한 인간의 영혼은 죽음의 본능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아니 너무나도 깊이 사색하고 너무나도 진지한 한 인간은 그 스스로 죽음의 본능을 불러들일 수 있다. 나는 기형도를 보면서 이 두 가지 가능성을 함께 본다. 그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결백한 한 청년이었으며, 역시 ‘너무나도’ 깊이 사색하고 진지한 한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죽음의 본능이 유혹하면 삶의 본능을 불러오고, 삶의 본능이 조증躁症의 환자처럼 나부대면 죽음의 본능을 슬쩍 불러들이면서 이 양자 사이의 줄타기를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인가. 그런 점에서 기형도는 지나치게 고지식했다. 그는 자학하듯 죽음의 본능이 부르는 소리 쪽을 끝까지 따라갔다. 끝이란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그 끝을 요령도 부리지 않고 따라가다니……. 적당한 자리에서 멈추었어야 할 그의 행보가 ‘끝까지’ 이어짐으로써 그는 시로써 죽음의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 죽음까지 감행하고 만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의 본능이 만들어내는 안팎의 수많은 죽음에 온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일이다. 죽음의 본능은 끊임없이 세포증식을 일으키며 한 사람을 어둠 속으로 익사시킬 만큼 괴력을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죽음의 본능이 삶의 본능을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그 시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그러니 너무 이른 나이에 조로한 얼굴로 죽음의 본능 쪽에 몸을 맡길 일이 아니다. 죽음의 본능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승화시키는 일은 필요할지 모르나, 죽음의 본능 안쪽으로 무작정 발길을 들여놓고 출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일은 안타까울 뿐이다. 기형도는 보통 사람들이 가기 어려운, 가서는 곤란한 죽음의 본능 쪽으로 지나치게 멀리 갔다. 그것을 우리가 바라보는 일은 두렵고 불안하면서도 우리의 욕망이 지닌 어떤 부분을 자극시켜주고 충족시켜준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사는 일은 막고 싶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죽음의 본능에 이끌렸을 때, 우리는 보통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보통 사람으로서 세속의 마당에 남아 적당한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삶은 진부하지만, 진부한 것이 세속사라면, 그것을 용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형도와 같은 삶에 무한한 경외감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보통 사람인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올 때까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묵묵히 영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이상주의자가 받은 형벌(?) ― 김남주 김남주의 시와 그의 생애를 보면서 나는 이상주의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김남주는 누가 뭐래도 근본적으로 이상주의자였고, 그 이상주의자의 꿈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는 고귀하다. 이상주의자는 순결하다. 이상주의자는 정의롭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만큼 위험하고, 이상주의자만큼 외롭고, 이상주의자만큼 결핍감에 사로잡히는 자가 또 있을까. 그런데 말이다. 세속의 찌든 시장터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전선 같은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자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고귀한 일이다. 어떻게 드높은 이상주의자의 꿈을 설정하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몸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이상주의적 속성은 사람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상주의자의 꿈을 위하여 순교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김남주가 가진 이런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면서 나는 그가 변혁시켜 완성시키고자 한 역사의 현실을 생각해본다. 역사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역사는 발전하는가. 인간은 역사를 발전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진정 역사는 인간 편에 서 있는가. 역사는 어쩌면 인간에게 복수를 가할 만큼 난폭하고 무정한 존재는 아닌가. 어떻게 하면 역사를 믿고 역사 속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꿈을 지닐 수 있을까. 유토피아는 과연 실현가능한가. 그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이외에도 무수한 물음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이쯤에서 그치기로 하자. 그리고 김남주가 이상주의자의 열정을 바치다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간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하자. 김남주는 사회주의자였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모순덩어리의 현실을 넘어서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순결한 이상주의자의 모습으로 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 이 땅에 그가 유토피아라고 믿는 사회주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남주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지금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박노해가 말하듯이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그 나름의 의미와 참뜻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회주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점이 아니라, 그 사회주의의 나라가 옳다고 믿으며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신뢰한 김남주야말로 이상주의자의 전형이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이런 김남주는 사회주의라는 종교 앞에서 순교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순교하는 사람은 그가 어떤 것을 믿고 옹호하든지 간에 거의가 이상주의자임이 틀림없다.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지 결코 순교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교란 한편 비장하다. 그러나 순교란 다른 한편 어리석다(?). 관념 이전에 육체가, 유토피아 이전에 현실이, 미래 이전에 지금 이곳의 삶이 진실일 터인데 그 관념을 위하여, 유토피아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인 김남주, 그는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받아야 할 형벌(?)을 받은 것이다. 그가 받은 형벌 앞에서 우리는 그의 이상세계에 동의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아픔을 느낀다. 세속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며 그 속에서 유연하게 처신하면서 세속의 단맛에 인생을 맡겼다면 그런 고통과 때이른 죽음은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리얼리스트의 냉정함과 교활함을 모른 채, 우직하게 이상주의자의 꿈을 삶의 한가운데에 놓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래서, 심란해진다. 그가 이 세속의 땅에서 당해야 할 고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5. 정치적 폭력에 짓밟힌 개인 ― 박정만 정치적 폭력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다. 폭력혁명으로 세력을 거머쥔 주체가 이 땅에 자신들을 태양으로 삼아 움직이는, 이른바 독재정치의 새판을 짜려고 폭력을 계속하여 휘두를 때, 개인은 그 아래서 개미 한 마리보다 나을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새판을 짜려는 독재자들은 잔인하다. 그들이 새판을 짜는 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모두 금 밖으로 몰아내며 공포정치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박정만의 생애를 보며 나는 새판을 짜려는 독재자들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진 한 개인을 본다. 주지하다시피 박정만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고문과 횡포로 인하여 어느날 직장과 건강과 가정을 다 잃어버린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그는 좋은 서정시인이었고, 그는 한 출판사의 책임감 있는 직원이었으며, 그는 한 가정의 따스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언로를 감시한 전두환 정권의 폭력 앞에서 한 순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는 폭력정치가 내두른 몽둥이 앞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박정만은 소위 ‘한수산 사건’에 아무 잘못도 없이 그야말로 ‘우연하게’ 연루되어 고문을 당한 이후에 폭력적인 정권을 저주하며, 폭력적인 역사를 두려워하며, 폭력적인 인간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며, 정치와 역사와 인간의 ‘저쪽’ 편에 그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가 마련한 그 자리에서 그는 그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냈거니와, 그것은 서정시 쓰기와, 술마시기와, 우주를 사모하기였다. 박정만은 서정시의 대가이다. 나는 그가 그토록 폭력적 정치의 희생물이 되었으면서도 어떻게 결이 고운 서정시만을 써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서정시 쓰기는 폭력정치의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식이며, 폭력정치에 대한 적개심을 가라앉히는 방식이며, 폭력정치에서 오는 좌절감을 껴안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정시 쓰기는 그를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이런 서정시 쓰기로 인하여 그는 잠시나마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지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서정시 쓰기는 그를 지탱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박정만의 서정시 쓰기와 더불어 언급돼야 할 것은 그가 마신 엄청난 술에 대해서이다. ‘1987년 6월과 8월 사이에 나는 500병 정도의 술을 쳐죽였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술을 밥처럼 먹고 마시며 고문 이후의 생을 살아냈다. 이렇게 술병을 옆구리에 끼고 생의 보폭을 옮긴 박정만은 명실공히 ‘술의 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폭력정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술의 나라’ 속으로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독재자의 폭력정치는 이렇게 건강한 한 개인을 ‘술의 나라’로 밀어넣어버렸다. 그 속에서 박정만은 이성 너머의 혹은 이성 이전의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은 그로 하여금 시의 귀신에 들린 사람처럼 시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술의 나라에서 서정시 쓰기, 그러나 이것도 그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 영토에까지 가끔은 독재자의 폭력정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영토에 머물면서도 가끔은 독재자의 폭력정치가 가한 아픔으로 치를 떨 때가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독재자의 폭력정치가 아예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더 멀리 거처를 옮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신을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로 무화시키는 일이다. 아니 풀어놓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그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그것이야말로 ‘죽음’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박정만은 세상을 버렸다. 그는 이 세상을 버리면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종시(終詩)'의 전문 ‘광활한 우주’ 속으로 거처를 옮긴 박정만, 그는 이제서야 지독한 독재자의 폭력 정치가 난무하는 땅으로부터 비로소 온전히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죽음을 보면서, 아직도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하는 우리들은 여전히 아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6. 허무로부터 벗어나는 길 ― 진이정 허무에 발목 잡혀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나 허무에 발목 잡혀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허둥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허무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다가온 그 허무의 늪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그 허무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어느 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위장일 뿐, 허무는 우리의 몸과 삶 근저에 자리잡고 언제든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허무와의 긴 싸움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고, 수시로 앞서 말한 바처럼 ‘허무의 늪’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 것인가, 골몰하게 된다. 일단 허무의 늪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구원에 도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많은 종교들이 구원을 말해도 유한한 인간조건 앞에서 구원을 온전히 체험하며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진이정의 시와 생애를 보면서 허무의 문제를 꺼낸 것은 그의 시와 생애의 근저에 이 허무와의 지난한 대결상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대결 속에서 진이정은 허무를 이긴 것일까, 아니면 허무에 예속돼버린 것일까. 어찌보면 진이정은 허무를 이긴 자같이 보이고, 또 다르게 보면 허무에 패배한 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잘 읽어가다 보면 진이정은 죽음으로써 허무를 자발적으로 극복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음으로써 허무를 자발적으로 극복하다니……. 그러나 이 역설을 깊이 이해할 때 진이정의 죽음은 허무에 짓눌린 수동적인 죽음이 아니라 허무를 휘어잡은 자의 능동적인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진이정은 죽음으로써 우주와 적극적인 합일을 이루기 이전에는 허무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죽음으로써 우주의 거대하고 무한한 흐름에 몸을 싣기 이전에는 삶의 첫 부분에도, 마지막 부분에도 허무가 담겨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처럼 죽음으로써만이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그러나 진이정은 인생을 잔인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분명 어느 면 잔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적 사유를 동원한다면 인생이 잔인하다는 생각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이정은 일찍 인생의 허무를 넘어서 우주의 거대하고 무한한 흐름 속으로 몸을 실었다. 그런 점에서 진이정은 허무의 늪 앞에서 너무 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현명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하기를 ‘내 인생은 소위 보람 있다는 일로 낭비되었다’(「거꾸로 선 자의 꿈을 위하여 3」)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죽음을 통한 우주와의 합일에 의하여 낭비로 얼룩진 삶을 일찍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나는 현명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허무, 그것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도전 속에 진이정의 죽음이 놓여 있다. 이런 그의 죽음은 허무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삶을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나는 글을 끝내며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무가 죽는 날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하여도, 우주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하기엔 우리의 생명욕이 너무나도 강력하다고…. 정효구 1958년 출생. 1985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현재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우주공동체와 문학의 길』 『상상력의 모험』 『몽상의 시학』 『한국 현대시와 문명의 전환』 『시 읽는 기쁨 1, 2』 등 다수가 있음. 문화저널21 & 계간시인세계 munha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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