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에서의 시 쓰기와 시인의 역할
강미영(시인)
우리의 삶의 현장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문학이 도태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사랑하고 쓰고자 하며 시인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가? 돈도 명예도 못 되는 이것은 나에게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자문해 보게 됩니다.
결국 시란 그 시인의 마음의 거울에 비친 세계를 표현한 노래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를 쓸 때나 읽을 때에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들은 그 시가 어떤 스타일로 쓰여져 있나 어떤 유형의 옷을 입고 있는가 세련되었는가 진부한가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시 속에 들어있는 시의 혼이 무엇인가 무엇을 고뇌하였으며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보면서 그 시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눈을 차원 높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철학적 명상과 지적 사고 그리고 치열하게 사물과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노력과 훈련을 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슬픈 척 외로운 척 아픈 척 하는 문학소녀적 감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 그럴 듯한 시의 유형을 찾아다니는 생명력 없는 일회성의 시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인의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계발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볼 때 그것을 고정관념의 잣대로 보지말고 그 이면의 의미를 바라보려는 훈련을 통해 그 감수성은 계발된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를 쓰고자 하는 의욕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우리 마음 속에 먼 저 생기게 해야 하는데 제가 즐겨 쓰는 방법은 음악과 독서입니다.
저는 시와 제가 다소 멀어졌다 느껴질 때 고요한 시간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영감을 주는 음악들을 듣습니다.
이렇게 묵상을 통해서 얻게 되는 시들은 그러나 그 순간에 태어나는 것들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제 가슴 속에 아프게 자리잡아 발아하기 시작한 생각의 씨앗들이 꽃망울 터지듯 한 순간 소름 돋는 노래로 제게로 오는 것이고 그것을 저는 받아서 적을 뿐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이제 만 8년이 지났습니다.
8년을 가슴앓이를 하고 난 뒤에 요즈음 저는 이방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서 많이 쓰게 됩니다. 이처럼 시는 오랜 시간을 시인의 가슴 속에서 익혀지기를 원합니다. 어느 순간 문득 토해져 나오는 시들을 저는 그저 받아서 적지만, 6년을 가슴 속에 담아 썩히고 익힌 제 영혼의 한 귀퉁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시란, 붙들려고 해도 고이지 않고 쓰지 않으려고 해도 터져 나오고야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묵상이 필요한 시인의 영성을 망가뜨리는 날마다의 고달픈 삶 속에서 시인으로서 제 본성과 만나기 위해 음악과 함께 책을 찾곤 합니다.
읽어야만 쓸 수 있다는 진리를 저는 40년의 제 시 인생을 통해서 체험해 왔습니다. 그래서 시와 멀게 느껴질 때 쓰고 싶을 때 저는 우선 읽습니다.
삶이 고달픈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하고 싶은 얘기 쓰고 싶은 얘기가 많아 그것이 피 멍울처럼 고여서 아픔이 되지요. 그러나 많은 독서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얄팍한 감성을 칼질해낼 줄 아는 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쓰는 시는 말장난이나 넋두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 앞서 늘 읽고 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읽음으로 하여 정신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많은 문학적 자극과 동기유발은 물론이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다른 예술에 비해 유독 독학이 가능한 예술이 문학인 까닭은 그것이 특별한 기술이나 이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하여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내고 좋은 글 속에서 온갖 쓰기의 비밀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보적인 문학 이론에 매이지 말기를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문학은 학문이 아니며 이론이 아니며 기술이 아니며 콘테스트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족합니다. 잔재주와 모방에 의존하여 상투적인 기교로 쓰는 시 쓰기를 벗어나기 위해 시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찾아 읽어야 합니다.
모든 시 쓰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모방의 세계를 벗어나야 하며 모방의 시기에 쓰여진 시들은 진정한 나의 것이 아니므로 발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써야 하는 것은 그냥 시가 아니라 진실한 시이기 때문입니다.
시어의 궁핍함을 느낄 때도 저는 읽고 또 읽습니다. 사전을 찾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한 권을 다 베껴 써보기도 했습니다. 좋은 문학을 하고 싶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읽어야만 합니다. 작가가 쓰지 못하는 것은 흉이 아니지만 읽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가려면 그만큼 피나는 문학적 훈련과 노력과 연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루 아침에 붓을 들고 추상화를 그릴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시의 표현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적절한 시어의 선택과 개발은 시인으로서 평생 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시는 언어선택이 극히 엄격한 장르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독서를 통해서 또는 국어사전 속에서 감춰져 있는 언어들을 사냥해야 합니다.
모든 예술가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믿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자유롭습니다. 어떤 평이나 명예나 비난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때 진정 스스로를 프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독자를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시인은 독자에게 아부하고 평론가의 눈치를 보면서 시류를 쫓아가고 문학상 주변만 기웃거리는 하루살이가 되고 맙니다.
모국어를 벗어난 이방에서의 우리의 삶과 문학은 춥고 암담합니다.
고급한 발표지면 하나 없고 고료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요 활자화 해 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해야 하는 우리의 문학 현실 앞에서 시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지켜갈 수 없음을 우리는 모두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록 더 모국어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모국어로 쓰는 우리의 시 사랑이 아득한 내 조국을 사랑하는 작은 몸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시인의 이름으로 이곳에 살고자 한다면 시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뿌리를 떠난 이 특수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조국과 우리의 후손과 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도 노래해야 합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의 정신적 리더 지성의 촉수가 되어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참 시인이란 매끈하고 아름다운 미문을 짜깁기하여 사람의 얕은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시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구비구비마다 은유로서 그 시대의 정신의 촉수가 되어 어둠과 총칼 앞에서도 잠든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으며 위로와 꿈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우리는 이민이라는 이 특수한 삶 속에 고립되어 있는 우리의 이웃을 깨울 수 있는 시를 써야 합니다.
신세타령 식의 문학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마추어 시인이라면 어떻게 쓰든 상관 없지만 프로란 공인이며 시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와 역할이 주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학을 잘못 배우면 펜으로 많은 죄를 지을 수 도 있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가볍고 저속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은 늘 바른 직관과 예민한 더듬이로 이 세계를 깊이 응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는 행복한 자가 쓰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고뇌하고 아파하는 자가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 때문에 내 앞의 삶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그저 묵묵히 치열하게 살아내야 합니다.
시는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란 마치도 심약한 사람들이 현실도피적인 감상으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언어의 나열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의 극히 초보적인 단계일 뿐입니다.
진정 성숙한 시는 심령이 강인하고 늘 깨어서 남보다 먼저 깨닫고 볼 줄 알며 고통의 겉모습보다는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 보면서 아프게 살아내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 참 시인을 꿈꾼다면 나의 시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나의 시 한 편보다 가족의 밥 한 그릇을 더 소중히 생각하면서 나의 시를 방해하는 이 고단한 삶의 십자가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눈 부릅뜨고 들여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시가 보일 것입니다.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짓 시가 아니라 깊은 울림과 영혼의 향기를 지닌 시, 오래오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오래오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며 오래오래 모두에게 위로와 희망과 용기와 용서와 꿈이 되는 당신의 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강미영 시인
전남 여수産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꽃이 죽어가는 이유>
現, 캐나다 토론토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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